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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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국양제'는 옛 이야기? 매일 한 걸음씩 ‘중국’이 되는 홍콩

‘홍콩판 국가보안법’ 시행 후 홍콩의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매년 열리던 톈안먼 사태 추모식이 삼엄한 감시 속에 열리지 않은 데 이어 축구경기에서 중국 국가(國歌)가 연주될 때 등을 돌렸다는 이유로 시민들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홍콩 최고법원의 영국인 판사들은 사임계를 제출하며 “홍콩의 정치 상황”을 이유로 들었다.

사진=AP연합뉴스

◆홍콩 축구대표팀 경기서 中국가 연주 때 등돌렸다고 체포

 

7일 홍콩프리프레스(HKFP) 등에 따르면 전날 밤 홍콩 경찰은 국가(國歌)법 위반 혐의로 18∼31세 남녀 3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의 경기에 앞서 중국 국가가 연주될 때 등을 돌려 국가 모독 혐의로 체포됐다. 당시 현장에는 사복 경찰관들이 배치돼 관중석을 촬영하고 있었다. 체포된 이들은 이날 오전 보석 석방됐고 12일 경찰에 출두해야 한다.

 

홍콩 경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경찰은 공개적, 고의로 국가를 모독하는 누구라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임을 강조한다”며 “유죄가 선고될 경우 그들은 최대 5만홍콩달러(약 874만원)의 벌금과 3년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AP연합뉴스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홍콩의 국가는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다. 중국 정부가 2020년 6월 홍콩국가보안법을 제정한 이후 같은해 9월 홍콩 입법회(의회)에서는 국기법·국가휘장법, 국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2019년 홍콩에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면서 축구장 등 공공장소에서 ‘의용군 행진곡’이 나올 때 많은 시민이 야유를 퍼붓고 중국 국기를 훼손하는 등 반(反)중 정서를 표출하자 홍콩 당국이 해당 법들을 제정해 대응에 나선 것이다.

 

홍콩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홍콩의 국가’로 널리 알려진 노래 ‘글로리 투 홍콩’을 금지했다. 구글 등에서 ‘홍콩 국가’를 검색하면 의용군 행진곡 대신 글로리 투 홍콩이 상단에 뜨고, 몇몇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도 홍콩 국가로 글로리 투 홍콩이 연주되자 아예 해당 곡을 금지해버린 것이다.

 

홍콩 독립을 지지하는 내용의 글로리 투 홍콩에는 시위대의 대표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時代革命)이 포함돼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홍콩 최고법원 영국인 판사 2명 사임계… “정치적 상황” 이유

 

이날 홍콩 법무부는 현지 최고법원인 종심법원 비상임 영국인 판사 로런스 콜린스와 조너선 섬션이 사임계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콜린스 판사는 성명을 통해 “홍콩의 정치 상황 탓에 사임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섬션 판사는 자신의 사임에 대해 다음 주 성명을 낼 것으로 전해졌다.

 

콜린스 판사와 섬션 판사는 각각 2011년과 2019년부터 홍콩 종심법원 비상임 판사로 재직해왔다. SCMP는 “홍콩 최고 법원에서 영국인 판사 2명의 사임은 법조계에 충격파를 안기는 정치적 폭탄을 떨어뜨렸다”고 분석했다. 이어 홍콩정부 한 소식통이 이들의 사임을 ‘불행한 일’로 묘사했다고 덧붙였다. 해당 소식통은 “이들 외국인 판사가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 사이에서 어떻게 샌드위치 신세가 됐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이번 사임이 홍콩 법원에서 민주 활동가 14명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한 지 일주일 만에 나온 것이라고 짚었다.

 

앞서 홍콩 법원은 지난달 30일 국가보안법상 전복 혐의를 적용해 전 입법회 의원 등 민주활동가 14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추후 형량 선고에서 최대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이는 2020년 6월 중국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직접 제정해 시행한 후 지금까지 진행된 최대 규모 재판으로, 총 47명의 민주 활동가가 기소돼 그 중 무죄를 주장한 14명에 대해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사진=EPA연합뉴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홍콩은 중국에서 관습법을 채택한 유일한 사법권으로 기본법(홍콩 미니헌법)에 따라 해외 판사를 채용할 수 있다. 이는 홍콩 법치에 대한 신뢰의 지표로 평가됐지만 이런 신뢰는 홍콩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발해 2020년 영국인 판사와 호주인 판사가 홍콩 종심법원에서 사임하면서 흔들렸다고 SCMP는 지적했다.

 

앤드루 청 홍콩 법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두 영국인 판사 사임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종심법원에는 4명의 현지 출신 비상임 판사와 다른 관습법 사법권 지역 출신 8명의 비상임 판사가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