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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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수업 거부, 언제까지 계속될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16)의대생 동맹휴학
교육 정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는 최근 교육 기사에 자주 쓰이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 논란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가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1년간의 학업 중단으로 이 의료 개악을 막을 수 있다면, 결코 아깝지 않은 기간임에 동의했다.” 올해 2월15일, 한림대 의대 비상시국대응위원회 위원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입니다. 그는 한림대 의학과 4학년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휴학을 결의했다며 후배들에게도 참여를 제안했습니다. 이후 다른 의대에서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2월20일을 기점으로 전국 의대생이 휴학 등 집단행동을 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이른바 ‘동맹휴학’입니다.

 

실제 2월20일부터 일주일 동안 의대 재학생의 70%가 휴학계를 냈습니다. 교육부는 2월28일부터는 부모 동의서 등 휴학 필요서류를 모두 갖춘 ‘유효 휴학’ 수만 발표했는데, 4월 말까지 의대생의 60%가량이 유효 휴학 신청을 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필요서류를 다 갖추지 않고 휴학계를 낸 경우까지 더하면 의대 재학생의 90% 이상이 휴학 신청을 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교육부는 이런 동맹휴학은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고등교육법상 휴학은 입대나 출산·육아 등의 사유를 제외하고 학칙으로 요건을 정하게 돼 있는데,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목적의 동맹휴학은 학칙상 휴학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휴학 승인 권한은 일차적으로 대학에 있지만, 교육부는 대학에서 동맹휴학을 승인할 경우 행정적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교육부는 각 대학을 감독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학칙 위반 여부에 따른 조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실상 교육부가 마음을 바꾸기 전엔 휴학 승인이 불가능한 구조인 셈입니다.

 

대학들이 교육부의 눈치를 보느라 휴학 승인을 보류했지만, 휴학계를 던진 의대생들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휴학이 승인되지도, 그렇다고 수업에 나오지도 않은 채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은 흘렀습니다. 6월이 됐지만 여전히 의대생들이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의대 수업은 한 학기 내내 파행 상태입니다. 개강을 미루고 학생들을 기다렸던 의대들은 4월부터 하나둘씩 수업을 시작했지만, 대부분 동영상 강의로 수업을 대체하는 등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학생이 수업을 거부 중인 상황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출석을 체크할 경우 출석 미달로 집단 유급이 발생할 수 있어서입니다. 각 대학은 8월 말까지 동영상 강의를 보면 출석으로 인정하는 등 유급을 막기 위해 각종 대책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정부가 의대생은 유급도, 휴학도 안된다는 기조이기 때문이죠.

 

사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의대생 사이에선 수업을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몇 년간 강의를 함께 듣는 의대 특성상 집단행동 거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합니다. 실제 일부 대학에서는 동맹휴학에 불참하는 학생에게 시험에 필요한 ‘족보’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하거나, 온라인 수업 미수강 사실을 공개 인증하라고 압박하는 등 수업 거부를 강요한 사례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교육부는 의대 수업 정상화 대책을 물을 때마다 “학생들과 소통해 설득하겠다”고 하지만, 실제 소통은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의대생 단체 대표들에게 만나자고 두 차례 공개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권역별로 5개 의대 학생회에도 비공식적으로 대화를 제안했으나 학생들이 거부하면서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의대가 있는 대학 총장들이 모여 협의회를 만들고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학생들이 마음을 바꾸길 기다리는 것 외에 뾰족한 수는 없어 보입니다.

 

사태 해결의 ‘키’는 의대생이 아닌 전공의 등 의료계 ‘선배’들이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선배들이 “의대생은 일단 학교에 돌아가라”고 하지 않는 이상 의대생들이 독단적으로 수업 복귀 결정을 하지 않을 분위기입니다. 현재 전공의나 의대 교수들도 연일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들의 논의에서 의대생 문제는 한발 뒤로 빠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의료계는 갑작스러운 증원으로 의료 교육 질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타당한 우려입니다만, 지금처럼 의대생들이 수업에 복귀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것 역시 의대 수업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예과 1학년인 신입생들은 학칙상 휴학이 아예 불가능합니다. 수업 거부가 계속된다면 이들은 결국 내년에 다시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올해 예과 1학년은 3000여명이고, 내년 신입생은 4500여명입니다. 최악의 경우 7500명이 6년간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 경우 수업 질은 필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갑작스럽게 추진된 것이 사실입니다.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현재처럼 정부와의 대화를 전면 거부한 채로 수업 거부 대치가 이어진다면 의대생들에게 돌아가는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정부는 조만간 의대생 수업 복귀 관련 대책을 내놓는다는 방침입니다. 의대생들이 마음을 바꿔 학교로 돌아올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려면 정부의 합리적인 대책과 선배들의 결심, 후배들의 결단이 필요해 보입니다. 부디 어른들의 싸움에 어린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