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 아래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세계 1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부채 비율도 세계 4위에서 5위로 한 계단 내려가는 데 그쳤다.
정부는 ‘가계부채 비율 100% 하회’라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는 가계부채가 감소가 아닌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 연도 개편으로 인해 ‘분모’인 GDP가 커진 결과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3.5%로 집계됐다.
한은이 최근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 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하면서 기존에 집계된 100.4%에서 6.9%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 역시 122.3%에서 113.9%로 8.4%포인트 떨어졌다.
이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규모는 그대로이지만, 분모인 지난해 명목 GDP 규모가 2236조원에서 2401조원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결과다.
정부는 그동안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00% 아래로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가계의 빚이 우리나라 전체 경제 규모(국내총생산)보다 많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0월 2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10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저의 책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 100% 하회라는 당초 정책 목표가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가 아닌 기준 연도 개편에 따른 명목 GDP 증가로 뜻밖에 달성된 셈이다.
하지만 달라진 기준으로도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비율 모두 여전히 다른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새 기준 연도에 따르더라도 세계 34개 나라(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가장 높았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93.5%로 떨어졌어도 세계 2위인 홍콩(93.3%)보다 여전히 0.2%포인트 높고, 한국을 제외한 33개국 평균치(34.2%)를 크게 웃돈다. 태국(91.6%), 영국(78.5%), 미국(72.8%) 등 5위권 국가들과도 차이가 작지 않았다.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기준 연도 개편에 따라 한국의 순위가 세계 4위에서 5위로 한 계단 내려갔다.
일본이 114.5%로 종전 5위에서 4위로 올라서며 한국과 자리를 바꿨다.
홍콩이 258.0%로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히 높은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중국(166.5%), 싱가포르(130.6%) 등 아시아 국가들이 뒤를 이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번 주중 지난해 말 기준 각국의 부채 비율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준 연도 개편 결과를 반영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이번 기준 연도 개편에 따라 100% 선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게 됐다.
새 기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 기준 98.7%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이후 2022년 말 97.3%, 2023년 말 93.5% 등으로 하락세를 나타냈다. 기준 연도 개편 전의 종전 최고치도 2021년 말의 105.4%였다.
한편 한은은 이달 하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기준 연도가 적용된 각종 지표를 토대로 건전성 관리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