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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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인질구출의 명과 암

2004년 9월 체첸 반군이 러시아 북오세티야 공화국의 한 초등학교에 난입했다. 반군들은 어린이와 교사 등 1100여명을 인질로 잡고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탱크와 로켓포를 동원한 최악의 군사작전을 명령했다. 어린이 186명을 포함해 331명이 숨지고 780여명이 다쳤다. 2년 전 모스크바 외곽의 국립극장에서 벌어진 인질사건도 최악의 참사로 꼽힌다. 체첸 반군이 극장을 점령해 관객 850여명을 인질로 삼았다. 푸틴은 독한 가스를 살포하는 작전으로 인질 129명을 숨지게 해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인질구출의 모범 사례도 적지 않다. 1977년 팔레스타인계 테러범들은 독일 국적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납치해 승객 등 91명을 인질로 잡고 동료 11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독일 특공대는 ‘마법 불꽃’이라 불린 작전을 수행했다. 폭탄을 이용해 비행기 동체와 날개에 구멍을 뚫고 진입했다. 이어 섬광탄을 터트려 테러범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 뒤 인질 전원을 구출했다.

이스라엘군도 빼놓을 수 없다. 1976년 6월 말 팔레스타인계 테러범들이 이스라엘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여객기를 공중납치했다. 비행기는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강제 착륙했고 협상 끝에 인질 163명이 풀려났지만, 유대인 106명은 계속 억류됐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수송기를 타고 공항을 급습하는 ‘엔테베 번개작전’을 펼쳤다. 납치범 7명이 사살됐고 인질 103명이 구출됐다. 작전에서 지휘관이었던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만 총격을 당해 숨졌다. 그의 동생이 엔테베 작전의 영웅인 형의 후광으로 정계에 입문해 승승장구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베냐민이 약 50년 전 형이 그랬던 것처럼 그제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끌려가 245일 동안 가자지구에 억류됐던 인질 4명을 구출하는 작전 ‘여름 씨앗들’을 감행했다. 인질은 구출됐지만, 최소 236명의 민간인이 숨지고 400명 이상이 다쳤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민간인 학살을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는다. 국제사법재판소(ICC)는 이미 푸틴에 이어 그를 전쟁범죄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두 사람은 금세기 인류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지도자가 틀림없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