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동안 4건의 화재가 잇따르니 침이 바짝 마르고 긴장되더군요.”
경기 시흥소방서의 이재훈(42·소방장) 화재조사관은 ‘2022년 4월25일’을 잊지 못한다. 신참 꼬리표를 뗀 3년차 때 처음 연쇄 방화 사건을 맞닥뜨렸다.
시흥시 정왕동의 한 오토바이 보관창고에서 오후 2시16분 첫 화재 신고가 접수된 뒤 오후 5시6분까지 모두 4곳의 건물 창고와 다세대주택 등에서 불이 났다. 이를 수상히 여긴 이 조사관은 관제센터 폐쇄회로(CC)TV 영상 추적을 제안했다. 발화 양태가 비슷하고 동선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반경이 넓지 않아 세 번째 화재 이후 팀장에게 연쇄 방화 가능성을 보고했다”며 “드론과 블랙박스, 주변 건물 CCTV 영상 등을 뒤지다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며 주택가를 배회하는 30대 남성을 특정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중국인 불법체류자 A씨는 범행 현장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주민 수십명이 대피하고, 8800만원 상당의 재산 피해가 나면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주변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정왕동 연쇄 방화 사건’이다.
이 조사관 본업은 화재조사관이지만 도내에선 ‘소방안전 일타강사’로 더 유명하다. 학교나 어린이 시설을 방문해 생활안전 교육을 하며 1인 2역을 톡톡히 하고 있다. 덕분에 화재조사와 소방안전 교육 분야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경기도지사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화재감식평가기사, 화재진화사, 응급구조사, 초경랑비행장치조종자 등 소방 관련 자격증 외에 안전강사, 어린이집 원장, 보육교사, 유치원 정교사 등 교육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아동보육을 전공한 뒤 어린이집 교사로 3년가량 일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늘 가슴속에 소방관의 꿈을 지우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 재학 중 경기 안산시에서 의무소방대원으로 일한 경험 때문이다. 2∼4명이 팀을 이뤄 화재조사를 했고, 복무를 마칠 때쯤 현장 경험을 터득했다. 이 조사관은 “2교대로 근무하는 조사관들을 따라 휴일도 없이 근무와 출동을 반복하며 자긍심과 사명감을 체득했다”고 회고했다.
교사와 화재조사관의 공통점으로는 ‘섬세함’과 ‘끈기’를 꼽았다. “끈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고, 아이 안전을 챙기거나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데는 섬세함도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어 “화재조사는 과학수사와 유사한 분야로 화재 통계와 원인, 피해사항 등을 아우른다”며 “사이렌 소리와 진압 현장음, 경광등이 사라진 적막한 현장에 2∼3명이 남아 발화지점 추론과 증거물 발굴, 화재 원인 조사를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말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재산이 불에 타고 있는 피해자들을 현장에서 만나 수없이 질문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빨리 불이나 꺼라”는 타박을 받기 일쑤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앞장서 도울 때마다 스스로 힘을 얻는다. 그는 “피해를 본 민원인들을 심리·경제적 도움을 주는 지원 프로그램에 연결해드릴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남다른 자부심도 드러냈다. 이 조사관은 “다시 소방관을 하겠느냐고 물어도 답변은 늘 ‘네’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화재조사 업무는 팀워크가 중요해 선배 사수들의 역할이 큽니다.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늘 ‘과정은 정의롭게, 결과는 공정하게’라는 문구를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