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의과대학 중 한 곳인 가톨릭대에서 헬스 트레이너, 필라테스 강사 등 비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카데바(실습용 시신) 해부 강의가 지난 1년간 유료로 진행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가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근거로 카데바 부족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특정 의대는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된 시신을 의료와 무관한 목적으로 활용해온 셈이다. 특히 가톨릭대와 연계해 강의를 주관한 민간 업체는 ‘프레시(fresh) 카데바’(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시신)라는 표현을 강조하며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했다.
10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A사는 이달 23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의생명산업연구원에서 ‘핸즈온 카데바 해부학’ 강의를 실시한다는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A사는 헬스 트레이너와 필라테스 강사 등 운동 지도자들을 교육하는 민간업체다. 해당 강의 역시 운동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가톨릭대 의대 소속 김모 박사가 직접 시신을 해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당일 9시간 동안 진행되는 강의 수강료는 60만원으로 책정됐다.
가톨릭대 의대는 지난해 A사의 요청에 따라 이 강의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지난해에 두 차례 강의가 진행됐고, 올해에도 비슷한 강의가 예정됐다. 학교 관계자는 “부상 방지와 예방의료 측면에서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며 “해부학 박사가 해부를 진행하면 교육생들은 참관만 하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정에 어긋나거나 위법인 부분은 없다”고 밝혔다. 현행 시체해부법은 관련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의사 또는 의대의 해부학·병리학·법의학 전공 교수 등에 한해 시체를 해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교 의대 소속 해부학 박사가 직접 해부를 진행한 만큼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게 학교 측 설명이다.
이러한 설명과 달리 지난해 진행된 10월 강의의 한 수강생은 블로그를 통해 “직접 카데바의 십자인대를 잘랐다”는 후기를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법이 시체 해부의 목적을 의학 교육 및 의학·의생명과학의 연구에 기여하기 위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만큼, 비의료인 대상 강의를 위해 시신을 해부하는 것은 법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을 피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행법에 해부 참관 자격에 대한 규정은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참관 가능자의 범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돼, 제도 개선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대해 의료계가 “실습에 활용할 카데바 수급이 부족하다”고 반발하는 상황에서 자가당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같은 학교인 가톨릭대 의대 김인범 교수 등은 지난달 발표한 논문에서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약 270구의 카데바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의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한 고인의 의사와 배치된다는 점 또한 문제다. 가톨릭대 홈페이지는 “시신기증은 의대생과 임상교수들에게 산교육의 기회와 의술의 발전을 주는 참사랑의 실천행위”라고 설명하고 있다.
A사는 홈페이지에 “자사의 카데바 클래스는 무조건 ‘프레시 카데바’로 진행된다”는 문구를 앞세웠다. 업체가 공개한 수강생 후기 중에도 “이렇게 상태 좋은 카데바는 처음”, “막상 해보니 냄새 안 났다” 등의 무례한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시신을 기증한 고인이나 가족의 숭고한 뜻과는 거리가 멀다.
A사 측은 본지와 통화에서 “확인 후 연락하겠다”고 말했지만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취재가 시작되자 A사는 “23일로 예정됐던 핸즈온 카데바 클래스가 취소됐음을 알려드린다”고 공지했다.
의사단체인 공정한사회를바라는의사들의모임은 이날 A사를 서초경찰서에 시체해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