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적이자 중도주의자로 꼽히는 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가통합당 대표가 전쟁 운영을 비판하며 전시 각료를 사임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인질 4명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료하며 국내 여론을 결집하려던 시점에 터진 악재다. 이스라엘에 휴전을 압박하는 미국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간츠 대표는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가 진정한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네타냐후가 막고 있다”며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비상 정부를 무거운 마음으로 떠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에게 “나라가 분열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며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올가을쯤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조기 총선 실시에 합의하라고 촉구했다.
간츠 대표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되자 전시 국민통합을 지지한다는 뜻에서 연정 참여를 선언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전쟁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 없이 확전만 추진한다며 반기를 들었고 지난달 6개 항의 전후 계획을 이달 8일까지 수립하지 않을 경우 전시내각을 탈퇴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이번 발표는 이를 실행한 것이다. 다만 그는 8일 인질 4명이 구출되자 발표를 하루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베니, 지금은 포기할 때가 아니고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썼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은 네타냐후 총리가 전시내각을 해체하고 기존 안보 내각에서 중대 사안을 결정한 후 일반 국무회의에서 추인하는 종전의 의사결정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혹은 간츠 대표의 자리에 야당 소속 강경파 의원이나 극우 연정 파트너를 앉힐 가능성도 있다. 가디언은 “네타냐후 총리는 그 어느 때보다 그의 연립 정부의 극우적 요소에 의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여전히 의회의 다수 연합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간츠 대표의 이탈은 네타냐후 총리에게 즉각적 위협은 아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전시 내각의 국제적 신인도는 떨어질 전망이다. 간츠 대표는 중도주의자로서 바이든 행정부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제동 장치로 여기는 인물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또 전쟁 장기화 속 휴전 및 인질석방 합의에 나서라는 여론이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간츠 대표의 이탈은 네타냐후 총리의 신뢰도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간츠의 행보는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끝내려는 미국의 외교적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에 압박하고 있는 ‘3단계 휴전안’을 지지하는 결의안 표결을 추진하는 동시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10일부터 사흘간 이집트와 이스라엘, 요르단, 카타르를 차례로 방문해 휴전을 압박할 방침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CBS방송 등과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서) 모든 인질들을 구출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며 올바른 방법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포괄적 휴전과 인질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SJ는 이날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목적으로 미국이 사우디 안전 보장을 돕는 조약을 거의 마무리지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사우디와 외교를 정상화하면 중동 내 입지가 강화되며 종전 이후에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휴전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로 풀이된다. 미국이 사우디와 안전 보장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미국 영주권자인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에 대한 책임을 묻던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놀라운 태도 전환이라고 WSJ는 짚었다.
아론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 국제 평화 기금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이런 조약을 권위주의국가와 체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WSJ는 “(협상 체결의 궁극적 성공은) 팔레스타인 분리 국가에 대한 이스라엘의 약속, 보다 즉각적인 가자 전쟁 종식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