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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옥 갈게”... 강남 엘리트 가장의 ‘세모녀 살해’ [그해 오늘]

2015년 이른 바 '서초 세모녀 살인사건'
사형 구형했지만 무기징역 선고 복역 중
서울 ‘서초 세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강모씨. 세계일보 자료사진

 

9년 전 오늘, 이른바 ‘서초 세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가장 강 모 씨(당시 48) 씨에게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대한민국 대표 부촌 중 한 곳인 서울 서초구에서 자가로 거주하고 있었을 만큼 여유 있던 집안의 가장은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을까.

 

사건은 2015년 1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씨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인물로, 2009년경 외국계 건축설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회계 및 재무파트 담당으로 일하면서 상무이사까지 승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회사에서 퇴사한 후,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한의원에 재무담당으로 입사하게 된다. 당시 그의 연봉은 9000만 원에 달했으며, 이는 그가 얼마나 능력 있는 인재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하지만 2012년 11월, 한의원의 원장이 바뀌면서 그는 퇴사를 종용당하면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강 씨는 은행에서 자신의 명의로 된 서초구의 한 브랜드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았다. 

 

서울 ‘서초 세모녀 살인사건’의 피의자 강모씨가 거주했던 서초구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 전경. 네이버지도 거리뷰 캡처

 

강 씨는 일을 그만두고 나서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여러 번의 실패를 겪으며 점차 좌절감에 빠지게 되었다. 그동안 강 씨는 아내에게 매달 400만 원씩 생활비를 주었고, 두 딸에게는 실직 사실을 숨긴 채 생활했다. 마치 출퇴근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집에서 약 1.5km 떨어진 고시원에 머물다 오곤 했다. 

 

재취업이 어려워지자, 강 씨는 주식 투자를 선택한다. 그는 대출받은 5억 원 중 4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고, 나머지 1억 원은 생활비로 사용했다. 그러나 주식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보아 약 2억7000만 원을 날리게 되었다. 그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부담감에 시달리던 강 씨는 아내로부터 “대출금을 빨리 변제하라”는 압박까지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 씨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절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지만, 자신만 죽게 되면 아내와 두 딸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결과, 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하겠다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되고 실행에 이르게 된다.

 

사건 발생 전날 오후 11시쯤 강 씨는 미리 처방받아 놓은 수면제를 와인에 섞어 아내 이 씨에게 건네주었다. 그 시간 동안 아내와 두 딸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그는 책상에 앉아 메모를 작성했다. 메모에는 “미안해 여보. 천국으로 잘 가렴. 나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를게” 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타 직계가족에게 남긴 메시지에는 “통장에 남은 돈은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의 치료비와 요양비에 쓰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새벽 3시가 되자, 강 씨는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와 방에서 자던 작은 딸, 큰 딸을 순서대로 살해했다.

 

새벽 5시가 되자 강 씨는 자가용을 몰고 청주 대청호로 떠났는데 그는 그곳에서 목숨을 끊을 계획이었다.

 

그날 오전 6시 28분, 119에 긴급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절망에 가득 차 있었는데 “아내와 딸 둘을 죽였다. 나도 곧 죽을 것”이라는 자백이었다.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강 씨였다.

 

그러나 강 씨는 막상 목숨을 스스로 끊기에는 실패했다. 신고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못하자,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다시 차를 몰고 경북 문경까지 갔다. 그동안 경찰은 강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낮 12시 21분, 경찰은 문경 농암면 대정숲 인근에서 강 씨를 발견하고 검거했다. 

 

그때 강 씨는 라운드 티셔츠와 검은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그의 행색은 매우 초라해 보였다. 바지는 모두 젖어 있었고, 그는 큰 저항 없이 경찰의 검거에 응했다. 그의 손목에는 목숨을 끊기로 시도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모든 일은 약 1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2015년 6월 11일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최창영)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아내와 두 자녀를 살해하고도 아무런 반성이나 후회도 하지 않고 있다”며 “강 씨는 죄책감 없이 오히려 자신이 자살하지 못한 것이 실패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더 이상의 관용은 허용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강 씨에겐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선고 이유에 대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극형에 처하기보다는, 향후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상태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강 씨는 항소했으나 2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현재 그의 나이는 57세로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