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출산의 고통에 대해 ‘자연분만은 선불제, 제왕절개는 후불제’라고 한다. 진통을 겪지 않고 수술로 아이를 낳더라도 수술 부위 통증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제왕절개 후 수술 통증을 줄이고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약물의 도움이 필요하다. 산모들이 주로 접하는 것은 무통주사(경막 외 마취제)와 페인버스터(국소마취제), 그리고 엉덩이 주사 진통제다.
페인버스터는 수술 부위 피부에 카테터를 삽입한 뒤 직접 약물을 주입해 통증을 줄이는 시술로 비급여다.
예전에는 수술 후 바로 무통 주사를 달고, 통증이 심한 경우 진통제를 맞으며 회복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2017년 국내 처음 도입된 페인버스터가 산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엔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함께 맞는 제왕절개 산모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지난 5월 보건복지부가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동시에 쓸 수 없다는 취지의 급여기준 개정안 행정 예고를 냈다. 산모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복지부는 “절충안을 고려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복지부는 11일 오후 기자단 설명회를 열고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에 대해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과 요구에 따른 선택권 존중, 두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절충안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의료기술 재평가에서는 다른 통증조절방법(무통주사 등)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수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페인버스터)를 함께 사용하는 것을 비교했을 때 통증 조절 정도의 차이가 없고 국소마취제를 6배 이상 투여해야 하는 등 전신적인 독성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산부인과와 마취통증의학과 등 관련 학회 자문과 다수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거쳐 지난 3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및 보고 과정을 통해 급여기준 개정안을 마련했다.
페인버스터의 본인부담 80%(선별급여)를 90%로 높이고 무통주사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게만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사실상 무통 주사만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서 출산을 경험하거나 앞둔 여성들의 반발을 불렀다. “저출산 시대에 진통제를 못 쓰게 하는 정책이 웬 말이냐”, “효과가 크거나 작거나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안 그래도 아플까 봐 걱정인데 무서워서 아이를 못 낳겠다” 등 여성들의 의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출산·육아 커뮤니티에는 페인버스터 효과가 확실하다고 주장하는 산모들의 경험담도 이어졌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제왕절개 후 훗배앓이가 정말 아프다. 무통 주사, 페인버스터, 주사 진통제까지 모두 맞아야 조금이라도 잘 수 있는 정도”라며 “부작용이 많지 않으니 너무 고민 말고 페인버스터를 맞으라”고 예비 산모들에게 권했다. 다른 이용자도 “부작용 때문에 권하지 않는 병원도 있지만 나는 효과를 많이 봤다”면서 “둘째도 페인버스터를 선택할 수 있는 병원으로 찾아갈 것”이라고 했다.
한 블로거는 “카테터 이물감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회복이 빠르고 사흘 만에 걷기도 했다”면서 “곧 아이를 낳을 친구들에게도 페인버스터를 추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인버스터는 병원마다 가격이 다른데 보통 25만∼30만원 정도다. 자기 부담률이 80%에서 90%로 상향 조정되면 산모들이 내는 금액이 2만~5만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전체 사용량 약 12만건, 총금액 241억원, 보험자 부담금 48억원으로 페인버스터가 차지하는 재정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 요인으로 검토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무통 주사와 제왕절개가 비급여로 전환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제왕절개와 무통 주사는 필수급여여서 계속 건강보험 보장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산모 10명 중 6명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다. 국내 제왕절개 분만율은 2014년 38.7%에서 2022년 61.7%로 크게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