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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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죽자”… 재판 졌다고 변호사 사무실에 방화테러 [그해 오늘]

57명 사상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정작 보복 타깃 변호사는 출장... 화 면해
지난 2022년 6월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변호사 사무실 빌딩에서 불이나 시민들이 옥상 부근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보내도 되나…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2년 전 오늘 7명의 희생자를 낳은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의 피해자들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장례식장에는 상복을 입은 유가족을 비롯해 고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영구차에 오르는 관을 내려치기도 했다. 숨진 변호사의 아내는 “잠깐 갔다 온다 했잖아, 집에 와야지”라며 관 위에 쓰러져 흐느꼈다. 유족들은 쉽사리 운구차를 떠나보내지 못했고, 장례식장 주변은 한동안 울음바다가 되었다.

 

57명의 사상자를 초래한 끔찍한 방화사건은 2022년 6월 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건물인 우정법원 건물 2층에서 발생했다.

 

조사 결과 천모씨(당시 53·남)가 민사소송 패소에 대한 분노심을 품고 상대방 변호사를 해치려는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천씨는 범행 1시간여 전 대구고등법원에서 투자신탁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했고 상대측 변호사 배모씨(72)에게 보복을 결심했다. 이후 그의 사무실과 700m가량 떨어진 자신이 살던 범어동 자택으로 돌아가 차량 조수석에 흰 천으로 싼 휘발유 유리병 3병과 11cm 등산용 칼을 싣고 10시 48분에 변호사 사무실로 출발했다.

 

사건 당일 그는 오전 10시 52분에 우정법원 건물 입구에 들어가, 10시 55분 경 11cm 등산용 칼을 들고 대구 수성구 범어동 우정법원 건물 2층 203호의 변호사 김규석 법률사무소를 습격했다.

 

범인 천씨는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복도에서부터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했으며 사무실에 들어감과 거의 동시에 사무실 출입구에 서서 불을 지르고, “다같이 죽자”며 칼을 휘둘렀다.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퍼졌기 때문에 천 씨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변호사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돌진하며 흉기를 휘둘렀다. 다른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이 무렵 연기에 놀라 황급히 뛰쳐나왔다.

 

사무실에 있었던 사람 6명 중 김규석(57)변호사와 그 40년지기 친구이자 사무장 박씨(57)가 각각 배와 옆구리를 칼에 맞았다. 직원들은 모두 책상 밑이나 창문 쪽, 탕비실 뒤편 등으로 몸을 피했고 다른 사무장 1명은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천씨가 사무실에 쳐들어간 지 23초만에 폭발이 발생했다. 건물을 뒤흔들고 인근 주민들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폭발이었다. 창문으로 탈출한 사무장 1명을 제외하고 범인 천씨를 포함한 해당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불은 20여 분 만인 11시 17분에 진화됐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지난 2022년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인근 변호사 사무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가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씨의 범행으로 천씨를 포함해 남성 5명과 여성 2명이 숨졌다. 나머지 다른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와 직원, 의뢰인 등 50명이 연기를 마시거나 화상으로 부상을 당했다.

 

당시 천씨의 원래 타깃이었던 배씨는 재판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가서 화를 면했다.

 

특히 사망자 중에서 사무장 김씨(54)와 김 변호사는 사촌 형제로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외모가 닮아 대구 수성구청 직원이 유족들에 신원을 확인할 때 “얼굴이 닮은 분이 있는데 두 분 다 사망하셨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족들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했다.

 

또한 30대 직원 남모씨는 결혼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새댁이었기에, “결혼식 뒤 처음 보는 게 장례식”이라며 울먹이는 조문객도 있었다. 

 

50대 직원 엄모씨는 미혼 여성으로, 일하면서 석사 학위를 취득해 인정받고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이었으나 그 꿈은 좌절됐다.

 

다른 사무장 박씨는 늦깎이 결혼을 했고, 90대 노인인 아버지를 직접 집에서 모셔왔다. 형이 10년 전 세상을 떠나 혼자 부모를 봉양하다 사고로 희생됐다. 그의 간호사 아내는 야근 날이면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늘 일찍 귀가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변호사협회는 매년 6월 9일 ‘법률사무소 방화 테러 사건 희생자 추모식’을 열고 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