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쌍방울그룹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추가 조사 없이 재판에 넘긴 데에는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가 ‘최종 결정권자’이며, 쌍방울 자금 800만달러(약 110억원)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사실을 인정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1심 판결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향후 이 대표 재판에선 제3자 뇌물죄 성립 요건인 부정한 청탁 입증,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이 전 부지사의 진술 신빙성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12일 이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 뇌물, 남북교류협력법·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와 김 전 회장을 이 대표 공범으로 보고 두 사람을 각각 특정범죄가중처벌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뇌물 공여 혐의로도 추가 기소했다.
검찰이 지난해 9월 이 대표를 2차례 소환 조사한 뒤 9개월 만에 전격 기소한 건 7일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에서 이 대표와의 연결 고리, 쌍방울이 경기도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달러와 이 대표 방북 비용 300만달러를 북한에 대납한 사실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을 통해 경기도와 쌍방울이 결탁한 불법 대북 송금의 실체가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신진우)는 300여쪽 분량의 이 전 부지사와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 1심 판결문에서 이 전 부지사가 김 전 회장에게 대납을 요구한 범행 동기로 최종 결정권자였던 이 대표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2018년 7월 경기도지사에 취임한 뒤 남북교류협력기금 약 346억원을 조성한 점 등을 들며 “당시 경기도 행보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대북 정책을 과감히 추진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이 대표가 정책 결정을 보좌한 이 전 부지사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향후 이 대표 재판에선 김 전 회장의 ‘부정한 청탁’ 여부를 둘러싸고 검찰과 이 대표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제3자 뇌물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 또는 약속한 때 성립한다. 대법원 판례상 부정한 청탁은 묵시적 의사 표시로도 가능하다. 청탁 대상인 직무 행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도 없다.
검찰은 이 대표가 이 전 부지사와 공모해 김 전 회장이 청탁한 대북 사업 지원을 약속했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 이 대표는 “쌍방울로부터 직간접적으로 부정한 청탁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에게 쌍방울의 대납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한 이 전 부지사의 진술 신빙성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이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검찰은 이 전 부지사 1심 판결에서 “이 전 부지사에게 ‘당연히 그쪽(이 대표)에 말씀드렸다’는 말을 들었다”, “2019년 이 대표와 2차례 통화했고 ‘저 역시도 같이 방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는 김 전 회장의 진술 신빙성이 인정됐고 다른 물적·인적 증거도 충분한 만큼, 이 대표 유죄 입증을 자신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이날 이 전 부지사와 방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검찰은 ‘금융 제재 대상자인 북한 조선노동당에 전달됐음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전 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일부가 무죄로 나온 데 대해 “북한 정권의 자금원 차단이란 입법 목적에 반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