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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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존재 의미 부정한 권익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를 통합해 2008년 2월 출범했다. 국무총리 소속으로 주요 기능은 고충 민원 처리와 관련한 불합리한 행정제도 개선, 공직사회 부패 예방·청렴한 공직 및 사회풍토 확립, 행정기관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부터 국민의 권리 보호 등이다. 국민 권익을 대변하고 부패에 맞서는 총괄기관이라 할 수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온화한 성품과 치우침 없는 재판으로 법조계 신망이 두터웠다.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2년 권익위원장에 임명되고 나서 입안한 것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일명 ‘김영란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9월 시행됐다. 하지만 공직사회 부정부패는 쉽사리 근절되지 않았다. 사익 앞에서 정의는 여전히 무기력했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권익위 존재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차츰 늘어갔다.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전현희 전 위원장 때는 권익위 판단을 두고서 이런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특혜 의혹과 관련해 “직무 관련성이 없다”거나, 박범계 의원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무부 장관 업무 수행을 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결론을 내려 입방아에 올랐다. 윤석열정부 들어서는 문재인정부가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를 월북자로 판단하는 과정이 타당했는지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거부하기도 했다. 국민보다는 권력의 눈치를 보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의구심까지 덧대졌다.

권익위는 지난 10일 윤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300만원 상당 명품백 수수 사건을 두고 ‘김영란법’에 대한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청탁금지법의 관련 조항은 배우자의 금품수수도 공직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권익위 말대로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어 사건을 종결한다면 청탁금지법의 배우자 금품수수 조항은 사문화될 수밖에 없다. 권익위 스스로 청탁금지법을 부정한 셈이다. 누가 수긍할 수 있을까. 마침 권익위 발표가 있던 날 김 여사는 윤 대통령과 나란히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국민 눈에 달가워 보일 리 있겠나 싶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