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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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감자 보급종 年 6500여t 생산… 물가 방어 ‘최전선’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평창 ‘무병 씨감자’ 생산 현장 가보니

기본종 생산에 세계 첫 ‘수경재배’ 적용
소수 인력으로 관리 용이 등 장점 많아
유리온실 4개동서 한 해 16만개 생산
농촌진흥청·강원도 협업 통해 재배
국내 전체 소요량의 20% 수준 보급

지난달 23일 강원도 평창의 농촌진흥청 산하 고령지농업연구소. 넓은 수영장만 한 크기의 거대한 유리온실에 씨감자 기본종이 촘촘히 자라고 있다. 기본종 1포기에는 10~30g 크기의 씨감자가 평균 50개 정도씩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마그네슘 등 각종 영양분이 포함된 물이 분무식으로 자동 공급되는 ‘수경재배’ 방식이 세계 최초로 적용된 덕분에 관리자는 1~2명만 보였다.

유리온실 한 곳에서 이렇게 생산되는 초기 단계의 씨감자 양만 약 4만개. 연구소 전체에 생산용 유리온실이 4동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 해 15만~16만개의 씨감자가 생산되는 셈이다. 기본종은 씨감자 재배의 첫 단계다. 조지홍 고령지농업연구소장은 “감자 바이러스는 진딧물을 통해 옮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경재배를 통해 기본종을 생산한다”면서 “수경재배는 꺾꽂이, 기내소괴경 등 예전 방식과 달리 소수 인력으로 관리가 쉽고 생산되는 씨감자 크기도 큰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이처럼 강원도와 협업을 통해 바이러스가 없는 양질의 ‘무병 씨감자’를 생산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영양번식을 하는 감자는 크기가 큰 씨감자를 통해 자라기 때문에 초기 생육이 빠르고 재배 기간이 짧은 장점이 있다. 다만 씨감자가 바이러스에 걸리면 다음 세대로 병이 이어질 수 있어 생산량이 최대 90% 줄어들 수도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면에 나서 바이러스가 없는 씨감자를 농가에 보급하는 이유다.

연구소에 따르면 씨감자는 ‘기본종-기본식물-원원종-원종-보급종’ 5단계를 거쳐 공급되는데, 기본종에서 농가 보급종까지 5년이 걸린다고 한다. 연구소는 수경재배를 통해 기본종을 생산한 뒤 기본식물까지 책임진다. 이후 강원도감자종자진흥원 산하 감자원종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1300여동 망실에서 원원종, 원종을 길러 일반 농가에 보급한다.

씨감자가 영글어가는 동안 바이러스를 보유한 진딧물의 공격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기본식물~원종’ 단계에서는 모기장을 닮은 거대한 망실이 설치된다. 가로·세로 1인치 안에 구멍이 400개 촘촘히 나 있는 망으로 둘레를 막은 망실은 진딧물 진입을 원천 차단한다. 길환수 감자원종장 장장은 “해마다 망실을 봄에 씌우고, 가을에 벗기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씨감자 생산 포장에 서로 다른 품종이 섞여 있는지, 병·해충 피해가 없는지 등에 대한 포장검사와 채종단계별 합동 진단 등 중앙과 지방정부가 협력해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강원도에서 생산되는 보급종은 연간 6500여t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씨감자 소요량의 20% 수준이다. 연구소 측은 “강원도에서 생산 보급하는 보급종이 중요한 것은 씨감자 품질과 가격 때문”이라면서 “강원도에서 적절한 가격에 생산 공급하는 우량 씨감자가 있기 때문에 민간업체에서 씨감자 가격을 함부로 올리기 어려워지고, 이는 생산비 안정과 물가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측은 씨감자 품종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수미 품종이 기후변화로 바뀐 환경에서 적응성이 낮아져 수확이 줄어들고 있는 데다 소비자 입맛도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봄 재배용으로는 속이 노랗고 맛이 좋으며 갈변이 지연되는 ‘골든볼’ 품종을 전국에 보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연중 햇감자를 공급하기 위해서 2기작 품종인 ‘은선’과 ‘금선’을 가을과 겨울에 재배하는 전남 보성과 전북 부안에 확대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개발한 수경재배를 이용한 씨감자 생산기술은 해외에도 지원된다. 씨감자 생산 시스템이 없던 알제리에 2007∼2014년 기술을 지원해 자체 생산 기반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이 사업은 2014년 국가 해외기술지원 우수사업으로 선정된 바 있다.

농진청이 추진하는 한-아시아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AFACI) 사업과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협력사업 등을 통해 베트남, 파키스탄, 케냐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뿐 아니라 감자의 원산지인 에콰도르, 파라과이, 볼리비아 등에도 한국형 씨감자(K감자) 기술이 지원되고 있다.

최근에는 도미니카공화국에 기술이 지원돼 ㏊당 18t이던 감자 생산성이 25t으로 크게 향상되기도 했다.

나아가 유엔 산하 감자 연구 주관기관인 국제감자연구소(CIP)에서도 우리가 개발한 수경재배 기술을 활용해 변형된 씨감자 생산기술을 개발, 개발도상국들에 지원하고 있다.

조 소장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새 기술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씨감자 시스템을 갖추게 돼 너무나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기후변화에 대응한 우수 품종 육성과 우량 씨감자 확대 보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농진청은 우리나라에 감자가 전래된 200주년을 기념해 오는 20일 강원 강릉에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심포지엄에서는 감자가 우리나라에 미친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농진청이 세계 식량안보에 기여한 성과 등을 홍보할 예정이다.


평창·세종=이희경·안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