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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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과 입학 3300 대 1… 인구 14억 ‘코끼리 대륙’에 거센 한류 열풍 [세계는 지금]

깨어나는 거대 소비시장 잡아야

인도의 한류 어떻길래
코로나 때 넷플 등 통해 콘텐츠 소비 늘어
젊은층 중심 한류바람 印 전역으로 확산
명문 네루대 한국어과 경쟁률 3300대 1

콘텐츠별 인기 국가 조사해보니
새로운 한류 ‘삼대장’ K드라마·뷰티·음식
인도서 美·日·英·中 제치고 모두 1위에
“넷플 시청 상위권 韓 콘텐츠 항상 2∼3개”

“인도행 성공열차 올라타라”
90년대 선구적 진출 현대차는 연내 IPO
아직은 한국기업 현지 진출 활성화 안 돼
코트라 “새로운 보물섬… 적극 개척해야”

“‘-습니다’ 할 때 ‘ㅂ’은 왜 ‘ㅁ’으로 소리 나는 거예요? 오늘 시험에서도 헷갈려서 틀렸어요.”

인도 뉴델리 자와할랄 네루대학교에서 지난달 23일 만난 안시카 굽타(20)는 기자에게 한국어 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도의 서울대’로 꼽히는 네루대에서 유럽어를 전공하는 그는 이번 학기 교양 과목으로 선택한 ‘기초 한국어’ 기말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길이었다.

 

지난 5월 23일 인도 뉴델리 자와할랄 네루대학교(JNU)의 한국어학과장실 입구에 달려있는 한국어 현판.

숨 막힐 듯 조용한 시험장 안에는 스무 명 남짓의 학생들이 답을 고르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답안지를 다 채우지 못했다는 프라틱샤 쟈(21)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해서 교양 과목으로 한국어를 택했는데, 인사말 배울 때는 재밌었지만 문법을 배우기 시작하니 너무 어렵다”면서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에서 라면이랑 김밥을 한국말로 주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4억이 넘는 인구 1위 대국 인도의 한류 열풍이 거세다. 인도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와 달리 ‘한류 불모지’로 꼽히는 나라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기간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을 통한 한국 문화콘텐츠 소비가 늘어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류가 크게 확산했다. 오랫동안 북동부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나타났던 한류 붐이 이제는 인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구 대국으로서 무궁무진한 소비시장 잠재력을 가진 인도의 한류 열풍은 국내 기업들에 더할 나위 없는 절호의 기회지만, 인도 시장 진출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어학과 경쟁률 3300대 1

인도에 부는 한류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어학이다. 기자가 방문한 네루대 한국어학과의 2022년 입학 경쟁률은 3300대 1. 30명을 뽑는 데 10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기다. 스리바스타바 사티안슈 네루대 한국어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네루대 외국어학부 전체에서 한국어학과 경쟁률이 3년 연속 가장 높다”며 “10년 전만 해도 16개 학과 중 10위 밖이었고, 코로나19 전에는 5위 정도에 머물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도약”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자가 급증한 탓에 입학 정원도 40명으로 늘었다. 입학시험에서 한국어학과 합격선은 100점 만점에 99.8점이다.

네루대 학생들은 한국어를 전공으로 택한 이유로 ‘자국과의 역사적 공통점’을 꼽았다. 8월 한국 서강대학교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한다는 사이프 알리(24·네루대 한국어학과 석사 재학)는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큰 매력을 느꼈다”며 “인도와 한국은 모두 식민지배(영국·일본)를 받았고, 한 나라가 두 개로 쪼개졌다(인도-파키스탄, 남한-북한)는 역사도 같다. 심지어 독립기념일도 8월15일로 똑같다”고 말했다.

 

한국어학과 석사생들은 양국의 역사·문화적 유사성을 파고들어 한국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다. 논문 주제부터 ‘한복의 현대적 부활’, ‘판소리의 부활과 혁신 전략’, ‘한국 아동 문학으로 보는 한국전쟁’, ‘유교와 힌두교에서 나타나는 ‘조상 숭배’의 비교 연구’ 등으로 다양하고 폭넓었다.

한국어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주로 통·번역 분야로 진출한다. 스리바스타바 교수는 “통·번역가로 일할 경우 월급이 3만∼4만루피(약 50만∼66만원) 정도로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인도의 청년실업률(20∼24세 기준)은 40%를 넘길 정도로 높은 편인데, 한국어학과 졸업생들도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한국어에 능숙한 고학력 인도 청년들은 국내 기업에도 유용한 인재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보다 낮은 인건비도 이들의 강점 중 하나다.

 

인도 뉴델리 자와할랄 네루대학교(JNU) 한국어학과 교양 과목 ‘기초 한국어’ 기말 시험지
인도 뉴델리 자와할랄 네루대학교(JNU) 한국어학과 교양 과목 ‘기초 한국어’ 기말 시험지

◆K드라마·뷰티·푸드, 美·日 제치고 인기 1위

전통적으로 인도 내 한류를 이끌어왔던 K팝에 이어 드라마와 화장품(뷰티), 음식은 새로운 한류 ‘삼대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교류문화진흥원이 지난해 11월 인도인 1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문화콘텐츠별 인기 국가’를 묻는 질문에서 한국은 드라마(60.4%), 뷰티(38.6%), 음식(23.5%) 분야에서 미국, 일본, 영국, 중국 등을 제치고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예능, 음악,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패션 분야에서도 한국은 1위에 올랐다.

2022년 5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한국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는 인도에서 공개 3일 만에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이 드라마가 인도에서 ‘깜짝 성공’을 거둔 데에는 뮤지컬 드라마라는 특징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뮤지컬 형식은 인도 발리우드 영화의 대표적 특징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낮에 뜨는 달’, ‘킹더랜드’ 등이 인기를 끌었고, K드라마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전병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뭄바이무역관장은 “인도 내 넷플릭스 시청 순위 10위권에는 한국 콘텐츠가 항상 2∼3개 이상 들어있다”고 전했다.

 

인도 뉴델리 자와할랄 네루대학교(JNU) 한국어학과 강의실 입구. 태극기와 인도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스리바스타바 사티안슈 네루대 한국어학과 교수 사무실에 붙어있는 ‘한글날’ 행사 포스터.

K팝과 K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인은 예쁘다’라는 인식이 커지며 K뷰티의 인기도 높아졌다. 지난달 24일 뉴델리에서 만난 매니쉬 다바데 네루대 교수(국제정치학)는 자신의 딸을 소개하며 “한국 화장품의 광팬이라 내 월급의 절반이 한국 제품을 사는 데 쓰인다”는 농담을 건넸다.

인도 내 한국 화장품 유통업체 ‘블리몽키즈’는 지난해 ‘인도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1위 전자상거래 플랫폼 플립카트에 입점한 지 5개월 만에 매출이 100배 성장했다. 인도 최대 재벌 그룹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자회사 ‘티라 뷰티’와 파트너십을 맺고 올해 인도에 진출한 한국 스킨케어 브랜드 ‘스킨1004’는 대(對)인도 수출액이 2022년 약 1500만원에서 올해 1분기(1∼3월) 25만4208달러(약 3억5000만원)로 급성장했다.

인도인들의 한식 사랑도 눈에 띄었다. 뭄바이에서 만난 라쉬리 다난자이(40)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밝히자 “우리 가족은 ‘오리가미’라는 한식당 단골”이라며 “일주일에 한 번은 간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직접 방문한 오리가미는 거의 만석이었다. 순두부찌개, 돌솥비빔밥, 김밥, 떡볶이 등 퓨전이 아닌 오리지널 한식 메뉴를 시켜먹는 테이블 손님의 대다수가 현지인 혹은 백인이었다.

 

네루대학교 한국어학과 석사과정 재학생과 스리바스타바 사티안슈 교수(오른쪽에서 네 번째).

◆“韓기업, ‘인도행 성공 열차’ 놓치지 말아야”

거센 한류 열풍에도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코트라 뭄바이무역관 전 관장은 “인도는 한국 기업에 새로운 ‘보물섬’이나 다름없는데, 중견·중소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전 관장은 유망 진출 분야가 식품과 화장품이라고 짚으며 “삼양식품의 라면 수출액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이미 다른 나라에서 충분히 잘 되고 있으니, 인도 시장을 개척할 필요성을 시급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전 관장이 바라보는 인도 시장은 “한번 뜨면 초대박이 터지는” 곳이다. 그는 “인도의 소비시장이 워낙 거대하다 보니, 스타트업도 한번 뜨면 곧바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는 인도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플랫폼 ‘트루 밸런스’ 앱을 통해 인도 핀테크 1위 업체로 떠오르고 있다. 인도의 대표 벤처캐피털(VC) ‘더써클’의 네메시사 유자인 부사장은 “트루밸런스는 내년에 유니콘 기업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인도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좋은 예다. 현대차는 세계 3위 규모의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뒤늦게 진출한 기아도 5위를 기록 중이다. 뭄바이와 뉴델리 시내 곳곳에서도 현대차 소형 SUV ‘크레타’와 해치백 ‘i20’, 기아 ‘셀토스’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성장세에 힘입어 연내 기업공개(IPO)를 신청하고 상장까지 마칠 계획이다.

전 관장은 “인도 시장은 현대차의 가장 큰 미래 수익원으로 평가받는데, 90년대에 선구적으로 진출한 덕”이라며 “우리 소비재 기업들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 가장 좋은 시기에,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인도에 진출해야 한다. ‘인도행 성공 열차’를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뉴델리·뭄바이=글·사진 이지안 기자 ea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