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은 중국을, 북한은 일본을 끌어당기면서 남북이 ‘신냉전 균열내기’ 경쟁으로 외교전이 시작되는 양상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13일 “북한이 몽골에서 일본과 접촉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몽골 접촉은 지난 3월 26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그 어떤 접촉도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한 다음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몽골은 과거 북·일 교섭이 진행된 적이 있는 국가고 앞으로 북·일대화 재개시 일본 총리 방북이 어려울 경우 정상회담 장소로도 꼽히는 제3국이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의 부모와 메구미의 북한 거주 딸이 2014년 북·일 정부 주선으로 상봉한 곳도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였다. 당시 메구미의 부모는 메구미의 딸 김은경 양을 만나고 온 뒤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손녀를 만나고 온 것으로 만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일 납치자문제 관련 ‘화해의 종결’이란 상징성이 있는 곳인 셈이다.
북한은 지난 3월 외무성 대표단을 몽골로 보내 몽골 대통령과 장·차관을 잇달아 만나 양국 협력방안을 논의했고 북한 매체를 통해 이를 공개한 바 있다. 몽골은 1948년 북한과 수교를 맺은 이래 우호관계를 지속 유지해온 국가다.
북·일 몽골 접촉은 납치자 문제가 풀기 어려운 문제임도 불구하고 북·일대화 성사 가능성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 그간 우리 정부 내에는 북·일 대화의 ‘입구’에 있는 납치자 문제를 풀 수 없기에 의미있는 북·일 대화가 성사되지 못할 거란 회의론이 팽배했다.
북한이 일본을 상대로 교섭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 하에서 상대 진영에 균열을 내는 전략적 효과도 크다.
북한이 전통 우방 중·러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 전략을 펴는 것도 감지된다. 최근 포착되는 북·러 밀착과 북·중 이완 현상은 1960년대 중·소 분쟁이 벌어지던 시기 북한이 두 국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전략적 이익을 챙겼던 모습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24년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성사시킬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전날(현지시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공식화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며칠 안으로 다가온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라고 언급했다.
외신들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18, 19일 쯤으로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중이고 푸틴 대통령이 수십년 만의 방문을 하는 것인 만큼, 단순 친교방문 수준을 넘어 양국 외교관계를 재정립하는 수준의 정상 선언이나 협정이 발표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반면 연초 ‘조·중 친선의 해’를 선포한 북·중은 강화된 관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올해 초 홈페이지에 ‘조중친선의 해 2024’ 배너까지 만들어 양국 교류 현황을 업데이트할 예정이었지만 4월 14일 이후 새 소식이 뚝 끊겼다. 북·중 수교일이 10월 6일임을 감안하면, 아직 양국 정상외교의 하이라이트를 준비할 시간이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달 말 상반기 성과를 총화하는 노동당 중앙위 제8기10차 전원회의가 예고된 상태임을 감안하면 상반기 북·중 관계에서 내세울 실적이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이다. 양측은 중국 내 북한 외화벌이 노동자 파견 문제로 지난해 연말부터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북한 전문가는 “최근 북한이 중국의 길들이기를 거부하고 중국과는 긴장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와 밀착하고 있는 북한의 외교 상황은 동북아에서 북한을 개입고리로 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를 경쟁구도로 만들고 있다”며 “중·러 경쟁과 견제를 이용해 자국 이익을 취했던 1960년대 중·소 분쟁 시기 북한의 줄타기 외교술과 흡사해 보인다”고 했다. 1960년대 북한은 중국과 밀착하면서 소련 흐루시초프 정권의 내정 개입을 견제했다. 이 전문가는 “북한의 자주외교는 일종의 헷징(hedging·위험분산)을 해온 북한의 전통적 외교 전략으로도 볼 수 있다“며 “최근 일본과 교섭의 끈을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차를 맞으며 대중, 대러 외교 관리 노력을 강화한 것과 묘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축성론’을 내세우며 올해 중국과의 외교관계 업그레이드에 공을 들여왔다. 한·미·일이라는 내성을 단단히 쌓은 뒤에 중·러라는 외성을 쌓을 차례란 이야기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조만간 한·중은 9년 만에 서울에서 한·중 외교안보 대화를 열 예정이다. 2013·2015년 국장급으로 치러졌다가 지난달 한·일·중 정상회의 계기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차관급 회의체로 격상이 합의된 회의체로, 재가동 자체의 의미가 적잖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국과 북한은 각각 한·미·일과 북·중·러 구도에서 약한 고리를 공략하려는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을 활용하기 위해 한·중·일 정상회의를 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북한도 북·일 교섭을 통해 기회를 보려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며칠 안으로 다가온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 비슷한 시기에 전개되는 한국과 중국의 외교안보 전략 대화가 있다”며 “우리가 이를 전부 십분 고려하면서 철저하게 주변 주요 우방국들과 우리의 전략적 파트너들이 북한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과 궤를 같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