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의도 세상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중심으로 돌고 있다. 4·10 총선 이후 한쪽은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정당을 착착 만들어가고 다른 쪽은 ‘이재명 사법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이 그러는 이유는 자명하다. 0.73%포인트 차이로 놓친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려면 그의 앞에 놓인 크고 작은 장애물을 걷어내야 한다. 이미 이재명 사람들로 채워진 민주당은 거칠 게 없다. 그럴수록 이재명 비호감도가 올라간다는 지적에는 “대안이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돌아갈 다리를 불태운 격이다.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으로 입법부를 장악한 거야(巨野)에 휘둘리고 있다. 제동을 걸 숫자가 안 되니 막을 뾰족수가 없다는 푸념이 넘친다. 그 답답함은 알겠는데 4·10 총선 이후 국민의힘 움직임을 보면 상황에 맞설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세 차례 연거푸 총선에서 지고 그중 두 번이나 참패한 정당이 맞나 싶다. 2020년 21대 총선 패배 때는 김종인 비상대책위 체제가 출범해 당명과 정강·정책 등을 바꾸기라도 했다. 덕분에 30대 당 대표가 등장했다.

총선 끝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총선 백서는 감감무소식이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책임론을 놓고 왈가왈부하더니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7월 전대 이후로 미룬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혁의 시작은 진솔한 반성에서 시작된다.” 4년 전 김종인 위원장 말이다. ‘진솔한 반성’을 담아야 할 백서조차 내놓지 못하니 개혁은 기대 난망이다. “모든 책임은 오롯이 내게 있다”던 한 전 위원장은 차기 당 대표 경선에 나설 태세다.
한 전 위원장이 촉발한 헌법 84조 논란은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극적으로 부각시키긴 했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대북송금 사건 유죄 판결로 사법 리스크가 더 커진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될 경우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되기 전 기소돼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은 중단될 수 없고 (대통령이)실형을 선고받으면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 의견은 엇갈린다. 법적 판단을 보탤 소양은 없지만 이런 의문은 든다. “국민들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을 사법부 판결로 무효화할 수 있나.” “가뜩이나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나라에서 이 대표를 뽑은 유권자들이 가만있을까.” 물론 이런 초유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법부가 이 대표 관련 사건 최종심을 서두르라는 압박은 가능하겠다. ‘전과자 대통령’ 논란이나 국민 분열이 없도록 법원 시간표가 지금보다 빨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사법의 영역이다.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 지도자들이 정치 영역에서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이재명 사법리스크’ 쟁점화로 면피하는 건 무책임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저자 조지 레이코프의 말처럼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라’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 머릿속에는 ‘코끼리’가 떠오르는 법이다. ‘이재명 대통령’ 프레임이 여당에 득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조국혁신당이 선전한 건 유권자들이 이재명·조국 사법리스크를 용납해서가 아니라 윤석열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욕구가 더 강했던 탓이다.
특검 정국에 용산 리스크는 커지는데 여당 인사들은 가위눌린 듯 조용하다. 영남·고연령·고소득층으로 쪼그라든 보수 정당의 지형을 넓히려는 치열한 혁신 논쟁도 들리지 않는다.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10여년째 재집권 전략을 짜듯이 민생 현장을 파고드는 전략도 안 보인다. 패장인 한 전 위원장은 물론 당권에 도전하는 이들은 어떻게 우파를 혁신해 미래 세대를 선점할지 답해야 한다. “이재명과 더 잘 싸운다”는 게 답이라면 지난 총선을 복기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