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사설] 환자들 외면 집단 휴진 의사들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 물어야

서울대 의대 17일부터 무기한 휴진
의사 1000명 ‘리베이트’ 정황 수사
野 “의대 증원 검증” 갈등 부추겨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환자와 시민들 호소에도 끝내 무기한 휴진에 들어갔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분당서울대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 교수 500여명이 어제부터 정규 외래 진료 및 수술 중단에 참여했다. 의대 교수 절반 이상이 휴진하면서 수술장 가동률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의대생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가르치는 의대 교수들이 청진기를 내려놓는 건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 사직한 전공의 제자들을 지키겠다고 환자들 곁을 떠난 꼴 아닌가.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20개 외래과목 휴진으로 환자들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장질환을 앓는 한 환자는 진료 일정을 잡으려고 병원을 찾았다가 “내년 8월에나 진료받을 수 있다”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오늘 대한의사협회 개원의들까지 집단휴진에 동참하면 환자들 불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걱정이다. 오죽하면 맘카페를 중심으로 집단휴진에 참여하는 병·의원 리스트를 만들어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자구책까지 논의되고 있겠는가. 정부는 사업자 단체인 의협이 개별 사업자인 개원의를 담합에 동원했다고 판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정부는 비상진료대책에 빈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 환자 불편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어제 집회에서 정부가 전공의 행정처분 완전 취소와 상설 의·정 협의체 구성, 2025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 요구를 들어줘야 휴진을 취소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협의체 구성은 정부야말로 바라는 바일 테고 내년도 의대 1497명 증원은 대입전형 시행계획에 반영해 발표까지 마친 사안이다. 행정처분도 법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서 아예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집단휴진으로 손실이 발생하면 병원이 의사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1000명가량이 고려제약으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 상당의 금품이나 골프 접대 등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정황을 경찰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의 모럴해저드 심각성이 드러난 것이다.

비상 상황에서 정국 주도권을 쥔 야당의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 의원들은 “의대 증원 결정 과정을 검증하겠다”면서 보건복지부 장차관 등을 국회로 불러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다. 정부에 힘을 보태줘도 모자랄 판에 발목이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칫 의료계 오판을 부추겨 오히려 갈등만 더욱 키울 수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