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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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침수 대비 없는 지하차도 수두룩, 바뀌지 않는 안전불감증

지난해 7월16일 미호천 제방 붕괴 및 범람으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119 구조대와 특전사 대원들이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참사로 버스 등에 타고 있던 14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감사원이 어제 ‘하천 범람에 따른 지하 공간 침수 대비실태’를 조사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11월부터 하천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재난관리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했는데 실태가 드러난 것이다. 감사 결과 전국의 지하차도 1086곳 중 182곳이 50∼500년 빈도 강우로 침수될 우려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159개 지하차도는 근처 하천이 홍수경보 등으로 범람했을 때 지하차도 통제 기준에 침수 위험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132곳은 침수 피해 시 차량 진입 차단시설이 없었다. 182개 지하차도 중 중심부 터널 구간에 피난·대피시설이 설치된 곳은 19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 이후 지하차도 안전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공염불이었던 셈이다.

인구 밀집 지역 하천의 제방 월류(물이 넘치는 현상)나 붕괴로 발생한 지하 공간 참사가 정부의 총체적 업무 태만과 관리부실에 따른 것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사고 발생 때마다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했던 정부와 지자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환경부는 하천설계기준을 운용하면서도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홍수방어 등급 세부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하천을 관리하는 지자체는 하천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구간별 치수 중요도와 관계없이 종전대로 ‘하천 등급’ 기준만을 적용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오류투성이인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 용역결과보고서를 방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홍수 취약지구에 대한 관리도 엉터리였다. 되풀이되는 재난을 막아내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이런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장마가 예보됐다. 올해도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1~3도가량 높아 비구름대가 지나갈 때 팝콘 터지듯 몸집이 커지면서 집중호우가 예상된다. 짧은 시간 한꺼번에 쏟아지는 ‘극한 호우’는 이제 기정사실이다. 이미 기상청은 올여름 기상 전망에서 예년보다 기온이 높고 강수량은 많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19일 늦은 밤이나 20일 이른 새벽 제주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올해 여름 장마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예측 불가능한 폭우가 발생하는 상황을 어떻게 대비할 건가. 안전불감증이 바뀌지 않는다면 올해도 지하시설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 다시 한 번 정부와 지자체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