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는 골프채를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린 A씨는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상대방은 “지금 바로 구매하고 싶다”며 “XX몰에 등록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해당 사이트는 수수료가 없는 중고 거래 플랫폼인데, 이곳에 결제 포인트가 남아 있어서 그것으로 구매를 진행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해당 사이트에 가입하고 물품을 등록했다. 곧바로 결제가 완료됐다는 알림이 왔지만 출금은 할 수 없었다. 사이트 고객센터는 “A씨의 계좌가 불법 세탁계좌인지 의심돼 계좌를 동결했다”며 “해제하려면 출금하려는 액수만큼 추가로 입금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A씨는 두 번이나 돈을 보냈지만 여전히 출금이 불가능했다. 그러는 사이 해당 사이트는 폐쇄됐고, 구매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A씨는 이렇게 200만원 가까이의 피해를 봤다.
18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올해 초부터 중고 물품 판매자를 노리는 신종 사기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A씨의 사례처럼 판매자를 다른 사이트로 유인해 정상 결제가 진행된 것처럼 속이고 출금을 위해 입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신종 사기 범행은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 판매자를 겨냥했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구매자는 물건을 받지 못하고 돈만 뜯길 가능성이 있어 중고 거래에 상대적으로 신중하지만, 판매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사기 사이트가 겉보기에 일반 쇼핑몰과 크게 차이가 없는 데다 유명 쇼핑몰과 이름이 유사해, 혼동을 유도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A씨는 “유명 쇼핑몰인 XX몰과 디자인이 거의 동일했다”며 “그 회사에 재직 중이라는 구매자의 말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중고 거래 판매자뿐만 아니라 오픈마켓에서 물품을 판매하는 상인들도 범행 타깃이 되고 있다. 오픈마켓 A사는 올해 3월 홈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방식의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피해는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기범들이 전화번호와 홈페이지를 바꿔 가면서 동일한 범행 수법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 정보 공유 사이트인 ‘더 치트’에 범행에 쓰인 전화번호 5개를 조회해본 결과, 수십건의 피해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기 번호별 누적 피해 금액은 적게는 1100만원에서 많게는 3200만원까지인 것으로 파악됐다. 알려지지 않은 전화번호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 피해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인지한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있지만, 경찰로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들이 해외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도메인 검색 서비스 ‘후이즈’(Whois)로 범행에 쓰인 사이트의 주소 도메인을 조회해보면 관련 사이트들은 중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해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사기 수법으로 인해 미제 사건도 가파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실이 경찰청으로 제출받은 ‘연도별 사기 범죄 미제사건 현황’ 자료에 따르면 미제 사기 사건은 2019년 8994건, 2020년 1만1596건, 2021년 3만8343건, 2022년 5만8092건, 지난해 7만114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