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는 최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월 3만원씩 정기후원을 신청하고 LG전자의 식물재배기인 ‘틔운 미니’를 받았다. 초록우산이 정기후원자에 한해 답례품의 성격으로 제공한 것이다. A씨는 이렇게 받은 제품을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판매한 뒤, 곧바로 정기후원을 취소했다. 그는 “(제품을) 받자마자 10만원 정도를 받고 팔았다”며 “주변에서 다들 이렇게 한다길래 별생각 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최근 초록우산이 20만원 상당의 답례품을 걸고 정기후원을 모집하면서 기부 유인 방식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재단 측이 “아동을 위한 기부 문화 확산”을 취지로 기업의 후원을 받아 답례품을 제공한 것이지만, 후원을 지속하지 않아도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이를 되팔아 이익만 챙기는 ‘무늬만 기부’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일각에선 고가의 답례품으로 후원자를 모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부의 본래 취지를 살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초록우산은 4월3일부터 3만원 이상 정기후원을 시작한 신규 후원자에게 틔운 미니와 ‘씨앗키트 패키지’를 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LG전자가 3월 초록우산에 제품 3000대를 후원 기부하면서 기업과 단체가 함께 캠페인을 기획해 시행했다고 한다. 재단 측은 당시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당초 취지와 달리 온라인상에서는 고가의 답례품이 화제가 됐다. 틔운 미니는 정가가 22만1000원으로 온라인 최저가로 구매해도 가격이 15만원이 넘는다. 정기후원으로 월 3만원 이상을 한 차례만 납부하면 증정품을 받을 수 있어, 이를 악용하면 5분의 1 가격 수준으로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셈이다. 온라인에선 ‘초록우산 후원하고 틔운 미니 얻는 방법’이 공유되기도 했고, ‘초록우산에 기부하고 틔운 미니 얻는 방법을 추천한다’는 등의 후기가 잇따랐다.
증정품을 되팔아 차익을 얻는 후원자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 제품이 중고거래사이트에서 10만원가량에 거래돼 캠페인 참여로 받은 틔운 미니를 팔면 7만원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온라인 중고거래사이트의 경우 2∼3월 한 자릿수였던 틔운 미니 미개봉 제품 판매 글이 4∼5월 30여개로 급증하기도 했다. 판매 글에는 ‘경품으로 얻었다’ 등 제품을 사지 않고 받았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초록우산 관계자는 “기업에서 사회공헌을 위해 저희 쪽에 도움을 줬고 후원자들도 좋은 의도로 참여한 분들이 많다”며 “후원받은 물품을 기부 수혜자에게 전달할 때도 있지만 후원자들을 모으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답례품을 받은 후원자 중 정기후원을 이어간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묻자 “파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증정품이나 굿즈(Goods·기획상품)로 후원자를 유인하는 기부자 모집 방식은 이전에도 논란이 됐다. 2019년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한국위원회가 정기·일시 후원자들에게 준 ‘호프링(Hope Ring)’이 대표적이다. 증정품이 인기를 끌면서 반지를 얻기 위해 후원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중고거래사이트에서 해당 반지가 몇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증정품으로 기부자를 유인하는 방식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후원자들이 기부 증표로 공유할 수 있고 후원자 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게 해준다는 의견이 있다.
동시에 고가의 증정품이 모금기관 간 모집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미희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증정품을 (받기) 위한 후원은 기부보단 ‘거래’로 보일 수 있고, 증정품 단가가 계속 높아지면서 모금기관 부담이 커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부자가 기부 의미를 되새기고 기부를 유인하는 방식에 고가의 물건을 쓸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 모금단체 관계자는 “기부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고 기부 효능감을 높여 기부자들이 지속해서 기부할 수 있게 기관들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