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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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육아, 민폐로 여기는 기업들?…“직장인 49% ‘갑질 피해자’” [일상톡톡 플러스]

직장인 10명 중 5명 “육아휴직·근로단축 제도 사용 ‘언감생심’”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해…보다 더 현실적인 사업주 지원 필요

육아휴직자 불만 근본적 원인, 휴직자 공백으로 인한 업무 과중
기업 입장에서도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 자체가 부담스러운 현실

“우리 회사에도 이런 동료 있으면 20만원 더 받을 수 있어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이용 동료 업무 분담시 지원금 지급

#1.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하니 회사에선 재계약을 해줄 수 없다고 하네요. 회사 측에서 재계약 조건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을 수 있나요?

 

#2. 직장상사가 다른 여성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과 관련해 '계열사에 있었으면 쓰지도 못했을 육아휴직을 여기서 쓴다'고 말합니다. 육아휴직을 못 가게 하는 건 아닌데 이런 식의 은근한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네요.

정부가 육아휴직 급여 인상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근로자 절반가량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의 제도를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정부가 단순히 제도 확대에서 나아가 이를 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사업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등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육아를 위해 노동시간을 줄인 동료의 업무를 분담한 경우 보상받을 수 있는 대책이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2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육아휴직·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 제도의 자유로운 사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49%)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응답자 특성별로 보면 ▲비정규직(58%)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62.5%) ▲5인 미만(61.6%) ▲52시간 초과 근로(62.4%) 등 과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 10명 중 6명꼴로 육아휴직·근로 단축 제도를 자유롭게 사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육아휴직 제도 등의 사용 경험자 중 불이익을 겪은 비율은 24.6%로 조사됐다. 이들은 주로 '직무 재배치와 같은 본인 의사에 반하는 인사 조치'와 '승진 제한 등 부당한 인사 조치'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임금·상여금 차별 지급 ▲교육훈련 등 기회 제한 ▲해고·파면·권고사직 등 신분상 불이익 ▲집단따돌림·폭행·폭언이 뒤를 이었다.

 

직장갑질119 측은 "22대 총선에서 여야 정당들은 자동육아휴직제도 도입 등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모·부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현실에서 정부가 우선 할 일은 직장인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줄이고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라며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업주를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출산휴가·육아휴직 등 제도를 사용 못 하게 하고 제도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가하는 건 불법이지만, 지난 5년간 신고된 2335건 중 기소되거나 과태료가 분석된 건수는 159건뿐"이라며 "직장인이 사장을 신고하는 게 쉬운 선택일 리 없음에도 처벌은 7%가 안 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같은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만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휴직자 공백으로 인한 업무 부담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주요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결과,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 가능하다’고 답한 사업체는 절반(52.5%)에 불과했다. 제도를 사용할 수 없는 이유로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과중’(42.6%)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업체에선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가 자리가 비어도 대체 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업 입장에서도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가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약 1년간 하루에 2~4시간만 업무를 대신해줄 인력을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

 

남은 동료에게 업무 부담이 갈 가능성이 높고 대체 인력 업무 숙련도 등도 문제가 된다는 게 사업체들의 입장이다.

 

노동부 한 통계를 보면 사업체가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1위는 ‘동료·관리자 업무 가중(48%)’였다. 업무공백 처리 방법으로는 “남은 인력끼리 나눠서 해결한다”는 응답 비율이 71.9%에 달했다.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도 발 벗고 나섰다. 육아 단축근무 직원의 일을 분담한 동료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이용하는 동료의 업무를 분담한 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보상을 지급할 경우 정부가 사업주에 최대 월 20만원까지 지원금을 준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시 주당 10시간까지 통상임금 100%(월 기준급여 상한 200만원)를 고용보험기금에서 급여로 준다. 원래는 주당 5시간까지만 통상임금 100%를 지급하고, 그 이상은 80%만 지급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는 8세 이하 자녀를 둔 노동자가 1년(육아휴직 미사용 기간 가산 시 최대 2년)간 주당 15~35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제도다.

 

정부가 저출생 추세를 반전하기 위한 대책으로 육아휴직을 더 잘게 쪼개 쓸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2주짜리 '초단기' 육아휴직도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부모 근로자는 자녀 어린이집 여름휴가 기간에 연차휴가 대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서 육아휴직을 4번으로 나눠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연 1회 2주 내외의 '단기 육아휴직'을 추가 도입하기로 한 덕분이다.

 

육아휴직 급여는 최대 월 250만원으로 높여 경제적 부담을 덜고, 육아휴직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육아휴직 급여는 최대 연 2000만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임신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는 더 유연하게 적용해 반차, 반반차 등 '시간단위 휴가' 문화가 조성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휴직 기간이 짧으면 사업주가 대체인력을 고용하거나 배치하기 어려워 남은 사람들이 휴직자의 일을 추가 부담할 가능성이 큰 만큼 직장 내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