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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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3개월 앞두고 왜?… 동료들 조준 살해한 임 병장 [그해 오늘]

A급 관심병사인데도 최전방 배치
10여발로 12명 사상 ‘난사 아닌 조준’
사형 선고 받고 국군교도소 수용 중
얼마 전 육군 헌병대를 배경으로 군 내부의 가혹행위를 묘사한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인기를 끌었다. 군무 이탈 체포조(D.P.)인 이등병 준호(정해인)는 탈영병들을 추적하며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한다. 드라마 방영 이후 재조명 받았던 사건이 있다. 10년 전 오늘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육군 22사단 GOP 소초에서 발생한 일명 ‘임병장 사건’이다. 

 

2014년 6월 21일 오후 8시 15분 임도빈 병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 55분까지 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직후 GOP에서 장전된 K2 소총을 아군 초병을 향해 난사했다. 피해자 대부분은 주간 근무자로 부사관 등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2014년 6월 21일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 GOP에서 복무하다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임도빈 병장이 2014년 7월 8일 오후 사건 현장에서 K-2 소총을 들고 현장 검증을 받고 있다.뉴스1(공동취재단)

임 병장은 무기를 반납하지 않은 채 GOP 후방 보급로 삼거리에서 동료 장병에게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총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12명의 사상자를 낸 임도빈은 K-2 소총과 실탄 60여 발을 소지하고 무장탈영했다. 

 

임도빈 검거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오인사격 사고로 2명이 부상을 입어 총 사상자는 14명에 이른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10여 발로 사상자 12명이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조준사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영 이후 관심은 임도빈의 범행 동기로 쏠렸다. 그가 전역을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일을 저지른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었다. 국방부는 상황 발생 직후 사고 대책본부를 설치해 후속 조치를 취하는 한편 강원도 고성지역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6월 22일 오후 추적 하던 군과 임도빈 사이에 고성군 현내면 명파초등학교 부근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임도빈은 6월 22일 밤 11시 다시 도주했다. 

 

당시 임도빈 아버지는 당시 40시간 넘게 도망다니던 아들과 전화통화에서 “부모 심정이 무너진다”며 자수를 권했다. 임도빈은 “어차피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데 돌아가면 사형 아니냐”라고 답했다.

 

이후 임도빈은 휴대하고 있던 K-2소총으로 왼쪽 옆구리를 스스로 쐈다. 폐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출혈이 많았지만 의식은 있었다. 

 

임도빈이 부대 내에서 상하 계급 모두에게 따돌림을 받는 ‘계급열외’를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향후 재판에서 ‘부대 내 집단 따돌림’이 핵심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으로 국방부 내 허술한 관심병사 제도 및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임도빈은 과거 칼부림 사고를 일으킨 전력까지 있던 상태에서 군대에 들어와 근무 여건이 열악한 최전방 부대에 배치됐고, A급 관심병사 판정을 받은 후에도 별다른 관리 없이 방치되다 GOP 근무에 투입됐다. 

 

중학교시절부터 왕따에 시달리다 결국 고등학교 재학 중 왕따 가해자를 죽여버리겠다며 칼부림 사건을 일으켜 자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부모는 임도빈의 과거 칼부림 이력 때문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이후 늘 마음을 졸여왔으나 최전방으로 배치된데 이어 GOP까지 투입되는 것을 달리 막을 방도가 없었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의 변호인은 사건 당일 임 병장이 근무를 섰던 13-8소초에서 발견된 순찰일지 뒷면 겉표지에 그려진 낙서들을 제시하면서 “(그림)대부분 후임병사들이 임병장을 모욕하기 위해 그린 것으로 이것만으로도 임 병장은 부대 내에서 집단따돌림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소 순찰 일지에 그려진 임도빈 병장 캐릭터. 연합뉴스

문제의 표지에는 임 병장의 외모를 희화화한 그림이 잔뜩 있었으며 일부 그림 옆에는 “XX”,“XX오탁구” 등의 글을 써 놓기도 했다. 표지에는 다른 소초원들을 그린 그림도 다수 있었으나 임도빈을 겨냥한 그림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를 본 임도빈은 평소 동료들이 자기 행동을 지켜보고,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고, 순간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 칼부림 사건을 일으켜 자퇴했을 때처럼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했다. 

 

임도빈은 당시 들었던 감정에 대해 “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온통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내가 이렇게 사회에 나가서 살아봤자 똑같이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다 죽이고 나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사건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5명의 병사는 ‘순직자’로 인정됐고 임도빈은 2015년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현재 국군교도소에 수용돼 있다. 


박윤희 기자 py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