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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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우크라 무기지원 큰 실수”라는 푸틴, 적반하장 아닌가 [논설실의 관점]

신조약 핵 동맹 길 열어 놓고도
‘방어’, ‘우려 말라’ 거짓 늘어놔
한국 외교 오판·뒷북 대응 논란
野, 북·러 거래 눈감고 정부 비판만
핵 대응 해법·초당적 협력 긴요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신조약)을 체결하자 대통령실은 그제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문제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맞불을 놨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살상무기 공급은)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겁박했다. 한·러가 서로 ‘레드라인’을 넘어 적성국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이자 화약고로 전락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한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에서 열린 국빈 만찬 행사에서 건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신조약에 대해 1961년 북한과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 체결했던 ‘조·소 조약’과 “모든 것이 똑같다”고 했지만 거짓이다. 유사시 자동군사개입조항을 담고 있던 조·소 조약과 달리 새 조약은 핵우산 동맹 가능성까지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신조약 4조는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으로 전쟁 상태에 처하면 상대방은 모든 수단으로 지체 없이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고 돼 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핵사용 문턱을 낮추고 있다”며 “위협이 커지면 적절하고 비례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도 “조·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조약”이라고 했다. 북한이 핵을 쏘고 미국이 확장억제보복을 하면 다시 러시아가 핵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도 모자라 ‘위협 조성 시 즉시 협상’같은 조항까지 추가해서 한·미군사훈련을 빌미 삼아 군사 지원에 나서는 길까지 터놨다.

 

그런데도 푸틴 대통령은 “(이번 조약이) 새로울 게 없다”, “방어적 성격이니 한국은 우려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궤변이 또 없다. 옛 소련과 북한은 1950년 6·25 전쟁을 공모하고 남침하고도 책임을 남한과 미국에 떠넘기기 위해 ‘북침설’을 주장하며 거짓 자료까지 국제사회에 배포하기도 했다. 불량국가인 북·러의 위험한 결탁은 다시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지형을 뒤흔들고 세계평화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외교적 오판과 안일한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 당국자는 어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러시아가 어떤 행태로 행동하느냐, 북러 간 어떤 식의 협력이 더 강화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주한 러대사도 초치했다. 뒷북 대응이다. 외교가에서는 신조약 체결 전에 단계별 상응 조치를 제시하며 우크라이나 무기지원을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당국은 신조약이 1961년 때보다 훨씬 못 미칠 것이라며 엉뚱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방북 전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아 대단히 감사하다”, “양국관계 발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한국 외교가 그의 기만술에 속거나 현혹된 게 아닌지 곱씹어봐야 한다.

외교부 임수석 대변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북·러의 위험한 폭주에 대비해 정교한 외교·안보전략을 짜고 군사적 태세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정부는 우선 북·러의 ‘핵우산 동맹’에 대응해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실질적 핵무기 공유나 한·일 공동 핵 개발, 독자 핵무장 같은 해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미 정가에서도 한국 등 동맹국에 대해 핵 공유협정을 개정하거나 독자적 핵 개발을 용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홀로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분쟁과 갈등을 감당할 수는 없다. 동맹국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최소한 일본처럼 단시간에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도록 핵 잠재력이라도 확보해야 한다. 북·러 군사동맹과 밀착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중국이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게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중고위급 교류와 대화를 더욱 강화하고 한·중 정상회담도 가능한 빠른 시기에 성사시켜야 한다. 

 

나라에 외교·안보 위기 상황이 닥치면 정치권은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정부 공격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신조약을 거론하며 “극단적 가치외교를 표방하며 러시아, 중국 등과 거리를 두었던 윤석열정부 외교가 초래한 결과”라고 했다. 이 대표도 “힘에 의한 평화와 편향적 이념 외교는 국가 이익도, 국민 안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서 정부의 외교기조, 특히 대북 대결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러간 ‘악마의 거래’에는 눈감고 내부 총질만 해대는 꼴이다. 국가 안위와 국민생명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집권당이 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