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26일 개막하는 2024 파리 올림픽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열리는 첫 하계올림픽으로, 2016 리우 이후 8년 만에 관중과 함께하는 세계인의 대축제로 돌아온다. 세계 최대의 관광도시 중 하나로 1924년 이후 100년 만에 하계올림픽을 유치한 파리는 곳곳의 유명 명소에 경기장을 설치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예정이다.
다만 한국 선수단의 파리 올림픽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대회 이후 역대 최악의 성적이 예상되는 탓이다. 여자 핸드볼을 제외한 모든 구기 종목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해 선수단 규모는 150여명 안팎으로 1976 몬트리올(50명) 이후 최소 인원이다. 선수단의 목표도 금메달 5개 이상, 종합순위 15위로 금메달 10개, 톱10 진입을 목표로 하던 예전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마냥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2020 도쿄 때 10대 선수로 출전해 잠재력을 확인했던 유망주들이 이제 20대 초반이 되어 전성기 기량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 선수단의 주축이 된 2000년대생 선수들이 젊은 패기를 앞세워 선전해 준다면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된 끝에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은 2000년대생 선수들의 등장을 알린 대회로도 기억된다. 당시만 해도 10대 후반이었던 Z세대인 이들은 승패나 메달 색깔에 연연하기보다는 가장 큰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 박수를 받았다. 이제 2024 파리 올림픽은 2000년대생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치르는 첫 대회다.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신체능력이나 운동능력이 전성기에 다다른 이들은 한국 선수단의 성적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
‘황금세대’가 등장한 한국 수영, 그중에서도 황선우(2003년생)는 수영 대표팀의 에이스로 평가받으며 ‘마린 보이’ 박태환(은퇴) 이후 명맥이 끊긴 올림픽 수영에서 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황선우가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는 3년 전 도쿄였다. 예선 때부터 자유형 200m에서 전체 1위의 성적으로 준결선에 오른 황선우는 결선에서도 50m, 100m, 150m까지 1위로 통과했다. 아쉽게 초중반 오버페이스로 인해 마지막 50m에서 7위로 처졌지만, 황선우가 지닌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도쿄 올림픽 이후 황선우는 세계적인 강자로 발돋움했다. 2022∼2024 세계선수권에서 각각 은메달, 동메달, 금메달을 따내며 박태환도 해내지 못한 3연속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의 기록을 세웠다. 자유형 200m의 유력한 금메달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황선우는 최근 열린 수영 대표팀 미디어데이에서 “도쿄에서의 아쉬움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 2020 도쿄 이후 많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다”면서 “현재 자유형 200m에서 1분44초대를 기록한 선수가 8명이나 될 정도다. 1분43초대의 기록을 세우며 메달을 따내고 싶다”고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수영 대표팀엔 황선우만 있는 게 아니다. 박태환이 고군분투했던 시절과 달라졌다. 김우민(2001년생)은 황선우와 함께 수영 대표팀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자유형 400m를 주종목으로 하는 중장거리의 강자 김우민은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을 비롯해 지난 2월 열린 2024 도하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파리에서도 메달 전망을 밝혔다. 자유형 400m는 파리에서 경영 종목 첫 시작이다. 김우민은 “제가 자유형 400m에서 좋은 스타트를 끊으면 다른 선수들도 좋은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드시 400m에서 포디움(시상대)에 오르겠다.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안세영(2002년생)은 2008 베이징 이용대·이효정 이후 끊긴 한국 배드민턴의 금맥을 이어줄 유력 후보로 꼽힌다. 지난해 세계선수권과 전영 오픈을 비롯해 14개 대회 출전, 13번 결승, 10회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세계 최강자로 성장했다. 10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선 1세트에 무릎 부상을 당했음에도 ‘숙적’ 천위페이(중국)를 상대로 엄청난 체력적 우위를 보이며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이 무릎 부상 여파로 올해엔 다소 부침이 심한 모습이지만, 지난 2일 싱가포르 오픈 우승, 9일 인도네시아 오픈 준우승 등 제 기량을 완벽히 회복한 모습이다. 3년 전 도쿄에서는 8강에서 천위페이에게 0-2로 패해 탈락했던 안세영은 파리에서는 세계랭킹 1위 자격으로 올림픽에 출전한다.
유도 대표팀의 허미미(2002년생)는 2012 런던 김재범, 송대남 이후 끊긴 금맥을 이어줄 유력 후보로 꼽힌다. 여자 유도에서 금메달이 나온 것은 1996 애틀랜타의 조민선으로 무려 28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후손으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허미미는 할머니의 유언을 따라 2021년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허미미는 지난 5월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세계랭킹 1위 크리스타 데구치(캐나다)를 꺾고 금메달을 따내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한·일 양국 유도의 장점을 모두 흡수한 완성형 선수인 허미미는 파리에서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 나선다.
여자 탁구 간판 ‘삐약이’ 신유빈(2004년생)도 도쿄에 이어 파리에서 두 번째 올림픽에 나선다. 어릴 때부터 탁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신유빈은 만 14세11개월16일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며 한국 탁구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갖고 있다. 신유빈은 임종훈과 함께 나서는 혼합복식에서 세계랭킹 2위에 올라 있다. 올림픽 전까지 지금의 세계랭킹을 지켜낸다면 2번 시드로 출전해 결승 전까지 중국을 만나지 않는 대진표를 만들 수 있다.
도쿄 올림픽 뜀틀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체조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일궈낸 여서정(2002년생)도 슬럼프를 딛고 파리에 나선다. 도쿄에서의 성과를 통해 ‘여홍철의 딸’이 아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시킨 여서정은 지난해 세계선수권 도마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여자체조 역사를 또 한 번 새로 썼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만 해도 막내였던 여서정은 이번 파리에서는 여자체조 대표팀의 맏언니로 나서 2연속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한국 사격의 ‘고교생 사수’ 계보를 이어갈 반효진(2007년생)도 있다. 그간 한국 사격에선 1992 바르셀로나의 여갑순, 2000 시드니의 강초현 등 고교생 사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반효진은 3년 전인 2020 도쿄 올림픽을 보고 사격을 시작한 선수다. 사격 시작 불과 3년 만에 정상급 선수로 거듭난 반효진은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최근 끝난 2024 국제사격연맹(ISSF) 뮌헨월드컵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는 등 기량이 급성장하고 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양궁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여자 대표팀 에이스인 임시현(2003년생)은 2020 도쿄에서 3관왕에 올랐던 안산의 뒤를 이을 후계자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임시현은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 이어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안산을 6-0으로 완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지난 22일 파리 올림픽 마지막 모의고사 격인 월드컵 3차 대회에선 32강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기본 기량만큼은 세계 최정상급인 만큼 파리에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이 밖에 고교생 신분으로 출전한 2020 도쿄에서 양궁 혼성 단체전과 남자 단체전 금메달로 2관왕에 올랐던 김제덕(2004년생)은 파리에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 2000 시드니 정식 종목 채택 후 2020 도쿄에서 처음으로 ‘노골드’에 그쳤던 태권도에서는 박태준(2004년생)이 금빛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근대5종의 성승민(2002년생)도 최근 중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