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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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구하라 금고털이범 몽타주 공개…청부업자? 면식범? [사건 속으로]

‘미제’ 구하라 금고 도난 사건 재조명
버닝썬 증거 노렸나…“청부업자 가능성”
“오뚝한 코에 광대 돌출, 170㎝ 후반男”
공소시효는 2030년…경찰 “긴밀히 대응”
2020년 1월14일 자정쯤 구하라씨 집에 침입해 금고만 훔쳐간 남성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장면과 범인의 몽타주(오른쪽).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갈무리

 

가수 고(故) 구하라씨가 생전 ‘버닝썬’ 사태의 실마리를 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구하라 금고 절도 사건’이 재조명됐다. 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범인의 몽타주도 공개되자 공소시효 전 범인 검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하라는 2019년 11월24일 2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후 두 달쯤 지난 2020년 1월14일 자정쯤 장례 절차가 끝나 가족들이 집을 비우자마자 고인의 자택에서 금고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개된 현장 폐쇄회로(CC)TV에는 신원미상의 남성이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구하라 자택 벽을 넘는 모습이 포착됐다. 키 170㎝ 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은 비밀번호를 아는 듯 현관 비밀번호를 눌러 보고선 문이 열리지 않자, 벽을 타고 2층 베란다를 통해 집으로 침입했다.

구하라씨 오빠 구호인씨가 생전 동생의 이사를 돕다 찍은 사진에 우연히 담긴 실제 금고 모습.

 

그는 구하라 휴대전화 등이 보관됐던 가로·세로 약 30㎝ 크기의 금고를 훔쳐 달아났다. 집 내부 구조에 익숙한 듯 금고가 보관된 옷방으로 직행했고 다른 고가품은 건드리지 않은 채 금고 하나만 훔쳐 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같은해 3월 구하라의 친오빠인 구호인씨로부터 신고를 받고 내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약 9개월간의 수사에도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고, 결국 ‘미제 편철’ 결정이 나면서 사건은 잠정 종결됐다. 경찰에 따르면 유족 측이 제출한 영상만으로는 범인이 누군지 찾을 수 없었고, 사건이 벌어진 이후 2개월이 지나 진정서를 접수했기 때문에 주변 CCTV 기록이 삭제됐다. 당시 구호인씨는 친모와 상속 관련 소송을 진행하는 등의 문제로 뒤늦게 절도 피해를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1월14일 구하라씨 집에 벽을 넘어 침입한 남성이 마당을 가로지른 뒤 현관 도어록을 누르기 위해 향하는 모습.

 

최근 BBC뉴스코리아의 다큐멘터리로 과거 구하라가 경찰과 버닝썬의 유착 의혹을 밝히는 데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금고 도난 사건 역시 다시 공론화됐다. 버닝썬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조직적이고 다각적으로 이뤄진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버닝썬 증거를 노린 범죄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후 지난 22일 공개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에서는 금고 도난 사건 용의자의 몽타주가 새롭게 공개되기도 했다.

 

CCTV를 분석한 결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 남성으로 범행 당시 왼쪽 귀에 귀걸이를 착용했고, 근시 교정용 안경을 착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얼굴형은 갸름했으며 코는 오뚝한 편이었다. 신장은 170㎝ 후반 정도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몽타주 전문 수사관’으로 불리는 정창길 전 형사는 범인에 대해 “턱이 길고 광대뼈가 조금 돌출됐다”고 묘사했다.

 

용의자가 면식범이 아닌 범행을 사주받은 청부업자나 심부름센터 관계자일 것이라는 가능성도 나왔다. 당초 경찰은 CCTV 영상을 토대로 범인이 집 침입을 시도하면서 구하라가 생전 사용하던 비밀번호를 눌렀으나, 번호가 그사이 바뀐 탓에 현관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그알 제작진이 영상의 화질을 개선해 다시 확인한 결과 범인은 디지털 도어록의 숫자판을 활성화하지도 못했다. 당시 구하라 자택에 설치된 도어록에는 열감지 센서가 있어 손바닥으로 화면을 넓게 접촉해야 숫자판이 나타나도록 설정돼 있었으나, 범인은 숫자판을 활성화하지 못한 것이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은 “문이 열릴 거라는 기대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다”며 “비밀번호를 알고 있거나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달받았지만 좌절된 것”이라고 추측했다. 비밀번호는 알고 있었으나 도어록 사용 방법을 몰랐던 탓에 현관문 출입에 실패하고 이후 2층으로 침입했다는 의미다. 표 소장은 “돈을 받고 행하는, 돈만 받고 받은 대로 자기 일만 해주고 그 이외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심부름센터, 청부를 주로 맡아서 행하는 이런 사람도 있다”며 용의자가 면식범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구하라씨의 빈소가 2019년 11월25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연합뉴스

 

금고 안에 있던 구하라의 휴대전화는 현재 유족이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구호인씨는 구하라가 숨진 뒤 가사도우미로부터 ‘구하라가 만일을 대비해 유서를 작성해뒀다’는 말을 전달받고, 도둑이 들기 전 금고를 먼저 열어봤다고 한다. 구씨는 “당시 금고 안에 편지, 계약서, 소속사에서 정산받은 서류, 집 등기권리증, 약 6대의 휴대전화가 들어있었고, 금고 안에 내용물은 내가 정리하면서 다 뺐다”며 “범인은 거의 빈껍데기를 가져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구씨는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니다”라면서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 있느냐. 고인의 물건을 훔쳐간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된다”고 분노했다. 구하라의 휴대전화가 아이폰인 탓에 유족도 비밀번호를 여태 풀지 못했다고 한다.

 

구하라 측 변호인은 “추가 증거가 확보되면 현재 멈춰 있는 수사 재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측은 “몽타주 하나만으로는 수사를 재개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이를 통해 가치 있는 제보들이 들어오면 긴밀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금고 절도 사건의 공소시효는 2030년까지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