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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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 자산 모으기”…제지공장 사망 19살 청년의 메모

생전 메모에 업무·자기계발 등 목표 담겨
전북 전주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전북 전주시 한 제지공장에서 설비 점검을 하다 숨진 19세 노동자가 생전 메모장 내용이 공개됐다. 

 

19세 노동자 A씨는 지난 16일 오전 9시 22분쯤 전주시 팔복동의 한 제지공장 3층 설비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사고 당시 6일가량 멈춰있던 기계를 점검하기 위해 혼자 설비실로 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작년 해당 공장으로 현장 실습을 나왔고, 학교 졸업 후 정규직으로 채용돼 근무했다. 사고 당시 고등학교 졸업 후 6개월 차 신입사원이었다.

 

숨진 채 발견되기까지 최소 1시간 정도 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지난 20일 유족 측은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측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며 숨진 A씨의 메모장을 공개했다. 올해 목표, 인생 계획 등 미래에 대한 목표가 적혀 있었다. 

 

‘2024년 목표’로는 ‘남에 대한 얘기 함부로 하지 않기’, ‘하기 전에 겁먹지 말기’, ‘기록하는 습관 들이기’, ‘운동하기’, ‘구체적인 미래 목표 세우기’ 등의 내용이 있었다.

 

‘인생 계획’ 항목에서는 ‘다른 언어 공부하기’, ‘살 빼기’,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편집 기술 배우기’, ‘카메라 찍는 구도 배우기’, ‘사진에 대해 알아보기’, ‘악기 공부하기’, ‘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등 자기 계발 관련 내용들을 큰 항목으로 먼저 기재했다.

 

이후 ‘다른 언어 공부하기-일본어·영어-관련 언어 공부책 사기-인터넷 강의 찾아보기-독학 기간 정하기’ 식으로 실현을 위한 계획표를 적어뒀다. 

 

경제 항목에서 A씨는 ‘월급 및 생활비 통장’, ‘적금 통장’, ‘교통비 통장’, ‘비상금 및 경조사 통장’ 등 필요한 통장 목록을 분류했다. 아래에는 자신의 현재 자산과 필요한 생활비를 계산한 뒤 매달 목표 저축액을 기입했다.

전북 전주시 제지공장에서 숨진 19세 노동자의 생전 메모장 내용. 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그는 또 메모장에 “조심히 예의 안전 일하겠음. 성장을 위해 물어보겠음. 파트에서 에이스 되겠음. 잘 부탁드립니다. 건배”라고 남기며 직장에서의 다짐을 드러내기도 했다.

 

A씨의 메모는 온라인상 커뮤니티에 널리 공유됐다. 네티즌들은 “저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많은 사람이 너무 이른 나이에 이 세상에서 사라지다니 마음이 아프다”, “성실하고 하고 싶은 거 많은 아이 같은데 정말 안타깝다”, “19살이라니 너무 어리다” 등 안타까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유족은 신입사원인 A씨가 홀로 작업을 수행한 점과 안전 매뉴얼이 명확히 지켜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족은 지난 20일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과 함께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며 명확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유족 측 박영민 노무사는 기자회견에서 “종이 원료의 찌꺼기가 부패하면서 황화수소 등 유독가스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이었는데도 왜 설비실에 혼자 갔는지, 2인1조 작업이라는 원칙은 왜 지켜지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김현주 전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대표는 “A씨는 평소 엄마에게 본인은 1, 2층에서 일하고 3층은 고참 선배들이 작업해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하지만 그날 A씨는 3층에 올라가서 작업을 하다 쓰러졌다”고 지적했다.

 

제지공장 측은 과로사 정황이 없고, 유독가스 등 위험성 또한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A씨가 사고 전 열흘 동안 하루 8시간만 근무했고, 사고 후 이틀에 걸쳐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했지만 검출되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홀로 작업을 진행한 점 또한 2인1조가 필수인 업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나윤 온라인 뉴스 기자 kk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