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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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쿠팡 PB상품 진열 규제, 자라나는 싹을 자르진 말아야

세계 1위 유통체인 월마트는 자체브랜드(PB) 사업을 1983년부터 시작한 ‘PB상품 전문 40년 유통기업’이다. 최근 5달러 미만의 식료품 PB 브랜드 베터굿즈(Better goods)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오프라인 강자인 월마트는 흥미롭게도 미국 온라인 커머스 시장 PB상품 점유율이 40%가 넘는다. 온오프라인에 전면으로 PB상품을 판촉해온 월마트는 그러나 한 번도 미국 정부로부터 ‘상품 진열 순서’ 규제를 받은 일은 없다. PB상품 비중이 40~50%에 이르는 스위스나 독일, 영국 같은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과 글로벌 유통기업들이 PB상품을 매개로 도약하는 모습과 최근 쿠팡의 공정위 규제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PB를 포함해 로켓배송 상품을 검색 순위 알고리즘에 상위 노출했다는 이유로 1400억원이라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연승 교수(단국대,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

공정위가 ‘소비자 오인’을 낳았다고 설명한 PB상품은 생수, 쌀, 물티슈 등 대기업 경쟁사와 비교해 현저히 싼 상품들이었다. 공정위는 이런 상품에 대해 “소비자 선호와 무관하게 검색 상단에 상품을 올렸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공정위의 판단으로 인해 쿠팡을 포함한 유통업체들이 추천 알고리즘과 관계없이 PB 상품을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투자하는 것이 위축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공정위 판결은 “앞으로는 경쟁업체가 피해가 볼 것 같으면 아무리 가성비가 좋은 PB상품도 판매량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우선 추천할 수 없다”고 압축할 수 있다. 이는 ‘경쟁법’으로만 PB상품 진열을 분석하고 가성비에 대한 소비자 수요, 물가 흐름 등은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 볼 수 있다.

 

PB 상품 판매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고 시장 가격 경쟁을 촉진해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닐슨IQ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 27%의 소비자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PB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유통사들이 PB 상품 전략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우선 진열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2023년 PB 상품이 전 세계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 시장의 19.4%를 차지했고, 특히 서유럽은 PB 상품 비중이 총 36%에 달한다. 스위스, 영국, 독일 등 대부분 국가들은 PB상품으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다. 스위스의 전월 대비 식료품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4월 4.8%에서 올 4월 1.2%로 낮아졌고, 영국도 같은 기간 19%에서 2.9%로 내려왔다. 독일은 17.2%에서 0.5%로 내려왔다.

 

품질이 우수한 PB 상품이 대기업 브랜드(NB)보다 저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 비용 절감에 있다. 별도의 외부 광고 없이 매장 내 진열이나 자체 홍보 채널 등을 통해 광고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수반한 각종 비용을 줄이는 게 가능한 것이다.

 

공정위는 PB 상품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상품 진열에 대한 제재는 향후 PB 판촉의 위축과 대기업 상품 쏠림현상이 나올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소비자 후생 저하 및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한국도 PB상품 확대가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집계 결과 2023년 식료품 기준 전체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1.9%% 커진 반면 PB 시장은 고물가 시기 11.8% 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식료품(비주류음료 포함) 물가 상승률은 5.9%에서 5.5%로 떨어졌다.

 

따라서 공정위발 쿠팡 제재는 자라나는 PB산업의 싹을 자를 수 있다. 한국의 PB상품 비중은 지난해 1분기 기준 단 3%에 이르는 후진국에 속한다.

 

쿠팡이 행정소송을 공정위에 제기할 방침에 따라 최종 판단은 추후 법원에서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PB상품 노출 리스크’에 유통업계의 가성비 상품 혁신은 주춤하고 가뜩이나 높은 물가에 소비자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 있다. 쿠팡에 대한 규제가 단순 개별 기업을 넘어 업계로 퍼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한국 유통산업의 발전과 물가 안정, 그리고 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큰 대의를 희생해선 안되겠다.

 

정연승 교수(단국대, 한국경영학회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