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들이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는 걸 좋아하는지.
“미국 내 군부대를 가보면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경험자가 20% 정도 된다. 직업군인이고 순환근무를 하니까 한국에서도 근무를 한 것이다. 직업군인을 하면 보통 20년, 30년을 근무하니까 그런 기회가 있다. 미군 부대를 대상으로 잡페어를 하면 자연스럽게 주한미군 출신들이 많이 지원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주한미군 출신들의 경조사까지 챙기는 것으로 아는데.
“카투사전우회장일 때부터 주한미군들을 만나다보니 그게 13년이 됐다. 가까이 지낸 주한미군 리더들을 한 명씩 다 찾아다니면서 만난다. 다들 잊지 않고 찾아주는 것에 대해 상당히 고마워한다. 미국 50개 주 중에서 중부 몇군데 빼고는 거의 다 가 봤다.”
―최근에도 미국을 갔다왔다고 들었다.
“한달 가량 미국을 돌아다니고 왔다. 국내 모 대기업 공장이 텍사스에 있는데, 은퇴한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나 주한미2사단장을 한 스캇 매킨 중장이 오스틴에 살고 있다. 친구들이다. 거기서 차로 2시간 떨어진 샌안토니오에 위치한 조인트 베이스 포트 샘 휴스톤의 사령관이 3성장군인데 한국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와 우리 대기업 현지 법인장을 연결해 줬고 서로 돕기로 했다. 테네시주에서 세탁기 공장을 하는 우리 기업과 인근의 포트 캠블이라고, 101공수사단 쪽하고도 연결해줬다. 삼성이나 LG, SK 등이 미국에서 큰 문제 중 하나가 좋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김종욱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 명예회장은 카투사 2년6개월 근무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말한다. 동두천 미군 제2보병사단 전산실에 소속돼 영어와 컴퓨터를 배웠고 글로벌 감각을 익혔다. 1970년대 컴퓨터를 배운다는 건 흔한 기회가 아니었다.
사업가로서 성공도 카투사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할 수가 없다.
상고에서 배운 회계에 영어와 컴퓨터 능력까지 장착한 김 명예회장의 전역 후 첫 직장은 부산 컨테이너부두운영공사다. 컨테이너 하역회사에서 물류 업무를 접한 기회였다.
2년여가 지나 그의 인생이 해상에서 항공 물류로 방향 전환을 한 건 미2사단에서 같이 카투사로 근무한 동갑내기 3개월 선임 덕이다. 항공물류회사에 근무하던 그가 해외지사로 나가면서 김 명예회장을 후임자로 추천한 것이다.
1982년부터 항공물류회사에 근무하면서 글로벌 물류회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10년쯤 실력을 쌓은 그에게 외국 거래처가 한국 지사 설립을 제안했다. 1992년 30대 중반 나이에 판알피나코리아 한국법인장에 올랐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됐다. 공항 지상조업에 발을 내딛은 것이다. 낯선 지상조업은 항공기가 착륙해서 이륙할 때까지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를 서비스를 일컫는다. 승객과 승무원 탑승, 수하물 및 화물 탑재, 항공기 정비, 급유 등을 모두 아우른다.
그 전까지 외국항공사를 위한 국내 지상조업 시장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양분하고 있었다. 인천공항 개항으로 제3업체들의 기회가 열려 글로벌 전문지상조업 업체 2곳이 진출했다. 하지만 양대 국적사 자회사들의 독점적 지위를 뚫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1년만에 철수하게 된 한 회사가 그에게 인수를 제안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김 명예회장은 대기업 계열사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서비스 차별화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잠재고객인 외국항공사 지점장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그들은 당시 지상조업 서비스 수준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는 항공사별 맞춤형 서비스를 만들어 제안하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캐세이패시픽항공을 첫 고객으로 모실 수 있었다. 점차 지상조업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지자 글로벌 업체인 스위스포트에서 투자제안까지 들어왔다.
스위스포트코리아는 현재 47개국, 300개 공항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한 국내 최고 지상조업사로 발돋움했다. 인천국제공항과 청주공항까지 해서 직원이 1200여명에 이른다. 그가 지상조업을 처음 시작할 때 직원이 32명이었다.
그의 회사는 인천국제공항에 있는 회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노조가 없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일차에 첫 외부행사로 찾은 곳이 인천공항이다. 바로 유명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한 현장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바람이 거셌던 현장에서 노조 결성 움직임을 피해가지 못했을텐데 어떤 비결일까.
김 명예회장은 기업 경영의 핵심은 직원 관리에 있다고 믿는다. 법적으로 노조가 없는 회사에서는 노사협의회를 만들어 분기별로 열어야 한다. 그의 회사에서는 매달이다. 그가 직접 노사협의회에 참석한다. 협의회에서 경영 실적 등 회사 상황을 브리핑하고 회사 문제점이 뭔지를 소개한다. 근로자 대표들에게는 각 부서의 애로사항을 말하도록 한다. 여기서 나온 내용은 그 다음 주 관리자회의에서 전달해 조치하거나 협의하도록 한다. 노조가 없더라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김 명예회장이 ‘K기업가정신’에 주목한 것도 이런 경영철학과 맞았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은 경남 진주는 삼성·CJ, LG·GS, 효성의 뿌리와 연결된다. 호암(湖巖) 이병철(1910~1987) 삼성 선대회장은 진주시 인근인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나 진주시 지수공립보통학교에서 수학했다. LG 창업자 연암(蓮庵) 구인회(1907~1969) 회장은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서 태어나 자랐고, 효성을 창업한 만우(晩愚) 조흥제(1096~1984) 회장은 진주시 인근인 경남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 출생으로 이병철과 함께 지수공립보통학교에서 배웠다. 국내 대표기업의 창업주 3명이 비슷한 시기에 진주 인근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공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은 이들의 성공을 풍수로 얘기한다. 김 명예회장은 이들이 이윤만 추구만이 아니라 사회 환원과 국가 기여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키워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사구시와 인본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지 않고서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7월 진주 K기업가정신재단을 설립한 배경이다.
앞으로 진주 출신 창업주들의 정신을 잇는 젊은 기업가들이 나오도록 하는 게 그의 꿈이다. 재단은 진주시와 협력해 대학생과 청년들이 K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아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는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해 주기 위해 청년포럼을 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다음달 8∼9일 2회 포럼이 ‘청년의 미래 K-기업가정신’을 주제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