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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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22주년 앞두고…“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제2연평해전서 부상당한 참전용사 손 ‘재조명’
송도고 모교 앞 ‘윤영하소령길’ 명예도로 지정
2015년 6월24일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 중 한 장면. 극 중 고(故) 윤영하 소령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송재호씨가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아들의 정복을 껴안고 흐느끼고 있다. 영화 ‘연평해전’ 스틸컷

“북한군의 불법 도발로 제 손은 으스러졌지만, 영광의 상처를 간직한 왼손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오는 29일은 제2연평해전 22주년이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29일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NLL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북한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5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시작된 해전이다.

 

제2연평해전 22주년을 이틀 앞두고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다.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는 북한국 포탄에 관통 당해 부상당한 왼손으로 평화를 기원했고, 고(故) 윤영하 해군 소령 모교인 인천 송도고등학교 앞은 그의 이름을 딴 ‘명예도로명’이 지정됐다.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권기형씨가 ‘럭키칠곡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칠곡군

◆제2연평해전 용사 ‘숫자 7’ 그린 이유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권기형(43)씨가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을 찾아 현역 시절 정복 차림으로 ‘럭키칠곡 포즈’를 취했다. 권씨가 상흔이 남은 손으로 숫자 7을 만든 이유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 더 이상 자신처럼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럭키칠곡 포즈는 왼손 엄지와 검지를 펴 검지가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는 모양이다. 6·25 최대 격전지인 칠곡군의 첫 글자 칠과 발음이 같은 숫자 7을 그려 ‘평화를 가져다준 행운의 칠곡’을 뜻한다.

 

칠곡 지역 한 방산업체에서 근무 중인 권씨는 제2연평해전 당시 북한 함정의 기관 포탄에 왼손 손가락이 잘렸다. 당시 그는 부상에도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지지해 탄창 4개를 한 손으로 교체하면서 응사했다.

 

총탄으로 으스러진 손마디의 뼈는 엉덩뼈를 이식하고 손목의 살로 복원했지만, 손가락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지금도 진통제가 없으면 통증으로 잠을 이루기 어려운 상태다.

 

권씨는 “제2연평해전 기념일이 다가오면 내 왼손의 상처가 더욱 아려온다”며 “앞으로 누군가의 손이 나처럼 고통 받지 않도록 한반도의 평화가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많은 분이 외상보다 더 큰 마음속에 상처를 갖고 있지만 긍지와 자부심 하나로 살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천 연수구 송도고등학교에 세워진 고(故) 윤영하 해군 소령을 기리는 동상. 연수구

◆ 모교 앞 ‘윤영하소령길’ 명예도로 지정

 

제2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끈 고(故) 윤영하 해군 소령을 기리는 ‘명예도로’가 생긴다.

 

인천 연수구는 지난 4월 제2연평해전 22주년을 맞아 당시 해군 고속정(참수리) 정장이었던 윤 소령의 이름을 붙인 명예도로명을 지정·고시했다. 윤 소령의 모교인 인천 송도고 앞 독배로(학익사거리∼학익터널) 465m 구간을 ‘윤영하 소령길’로 명명한 것이다.

 

‘윤영하 소령길’ 명명식은 오는 28일 오후 2시 그의 22주기 추모행사가 열리는 송도고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행사에는 고 윤 소령의 친동생과 그의 후배인 송도고 재학생, 해군 2함대 소속 동료 선후배 등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연수구는 설명했다.

 

명예도로는 사회공헌도 등을 고려해 일정 도로구간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할 수 있다. 실제 도로명 주소로는 쓰이지 않지만 상징적 의미가 있다.

 

윤 소령은 2002년 6월29일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한 북한군과의 제2연평해전에서 전투 초반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끝까지 자기 임무를 다하고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 영웅이다.

 

윤 소령은 2002년 6월29일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인천 옹진군 연평도 해역까지 남하한 북한 경비정 2척과 교전을 벌여 승리를 거뒀다. 당시 그는 전투 초반 큰 부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