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지난해 수해가 떠올라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죠.”
경북 예천군에선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와 산사태로 15명이 숨졌고, 2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예천군 벌방리에 거주하는 70대 김모씨는 본격적인 장마철을 앞두고 지난해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 같다. 지난 3월 착공에 들어간 사방댐 공정률은 64%에 그쳐 당장 큰 비라도 내리면 또다시 휩쓸려 무너질 수 있어서다. 김씨는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배수로를 만들면 좋을 텐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고 올여름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주말 동안 전국에 많은 장맛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국 산사태 취약지역 10곳 중 7곳은 산사태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로 경북 예천 등에선 산에서 흘러내린 토사물이 인가를 덮치며 2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음에도,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산사태 예방 활동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이 27일 공개한 ‘산림재난 대비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산사태 취약지역 2만7766곳 중 사방사업이 실시된 곳은 7008곳(25.2%)에 불과했다. 나머지 2만758곳(74.8%)은 산사태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또 민가와의 이격거리가 50m 이내로 인접해 산사태 발생 시 인명피해 위험이 있는 산지 12만6000곳 중 절반 이상(6만9000곳)을 기초조사 대상에서 제외한 사실도 드러났다.
아울러 산림청은 대피체계 구축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 위험구역 8만3855곳 중 5만5661곳(66.4%)은 대피체계가 미비한 상태였다.
산림청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산사태 예방에 소홀한 것으로 파악됐다.
위험도 최상위 A·B 등급을 받은 370곳에 대해 지자체들이 취약지역 지정위원회에 상정하지 않아 1년 이상 방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심지어 경기 남양주시는 취약지역 심의대상지로 판정된 지역을 임의로 C등급으로 낮춰 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감사원이 산불 대비 현황을 들여다본 결과, 산림청이 산불감시 폐쇄회로(CC)TV를 갖추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전국에 설치한 산불감시용 CCTV 1446대 중 645대(44.6%)는 자동회전 기능이 없었고, 자동회전 기능이 있는 801대조차 고정해놔 무용지물이었다. 또 산림청이 조기 진화를 위해 도입한 ‘헬기 골든타임제’도 보여주기식으로 운영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산림청은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절차가 누락되지 않고 모든 과정을 산사태 정보시스템에서 관리되도록 올해 연말까지 시스템을 개선하고 올해 산불 진화 헬기 운영 실적을 분석해 산사태·산불 예방시스템 개선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국무총리실도 장마철을 앞두고 전날부터 전국에 민정실 직원들을 보내 지하차도 안전 실태 점검에 나섰다. 감사원이 지난 18일 공개한 감사 결과 하천 범람으로 침수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하차도 182곳에 대해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등이 안전 조치를 완료했지만, 고위험 지역을 중심으로 현장을 한 번 더 확인해 보완 필요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위험한 현장에 직원들을 보내 감사원 지적 사항 이행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추가 조치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덕수 총리는 이날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를 찾아 집중호우 발생 시 현장 대응체계 등을 점검했다. 한 총리는 전국적인 홍수 관리상황과 올해 새로 도입한 인공지능(AI) 홍수예보, 국가하천 실시간 홍수상황 감시카메라 등에 대해 보고받고 “환경부 등 정부 부처와 일선 지방자치단체는 홍수 관리 체계를 차질 없이 운영해 여름철 호우 기간 인명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