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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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향한 이탈리아의 분노… “우파 약진 무시했다”

멜로니 총리, EU 정상회의에서 불만 토로
폰데어라이엔 현 위원장 유임 표결 ‘기권’
칼라스 고위대표와 코스타 의장엔 ‘반대’

유럽연합(EU)을 이끌 차기 핵심 지도부가 정해져 유럽의회의 인준 투표만 남겨둔 가운데 EU 역내 3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 우파부터 극우파까지 포괄하는 ‘유럽 보수와 개혁’(ECR) 그룹이 원내 3당으로 약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구성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2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 참석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기자회견 도중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탈리아는 2022년 10월부터 극우 성향 ‘이탈리아 형제당’ 소속인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재직 중이다. 멜로니 총리는 유럽의회에선 ECR 그룹을 이끄는 지도자에 해당한다.

 

2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멜로니 총리는 EU 차기 핵심 지도부 구성을 위해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졌다. 구체적으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EU 집행위원장을 연임시키는 안건에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카야 칼라스 현 에스토니아 총리를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로, 안토니우 코스타 전 포르투갈 총리를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 각각 추천하는 안건에선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이탈리아로 돌아가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멜로니 총리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EU를 성토했다. 최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는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인민당(EPP)이 1위,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민주진보동맹(S&P)이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멜로니 총리가 주도하는 ECR이 예상 밖의 선전을 거두며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하지만 정작 EU 차기 지도부 구성에선 EPP와 S&P의 의견만 비중있게 고려되고 ECR은 철저히 무시를 당했다는 것이다.

 

EU 차기 집행부의 ‘빅3’로 내정된 인물들. 왼쪽부터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후보인 카야 칼라스 현 에스토니아 총리, EU 집행위원장(유임) 후보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현 위원장,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후보인 안토니우 코스타 전 포르투갈 총리. 이들의 추천 결정을 위해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폰데어라이엔에 대해선 기권하고 칼라스와 코스타한테는 반대표를 던졌다. AFP연합뉴스

멜로니 총리는 EU 차기 지도부 구성에 대해 “EU 내 우익 세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결과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는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 정상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EU의 고위직 인선은 오랫동안 역내 1위 경제대국인 독일과 2위 프랑스 양국이 물밑 협상을 통해 결정해왔다. 이번에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유임 등을 ‘밀실’에서 협의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EU 역내 3위 대국인 이탈리아가 의사결정의 핵심 과정에서 배제된 것에 멜로니 총리가 불쾌감을 드러낸 셈이다.

 

일각에선 유럽의회의 인준 표결에서 멜로니 총리의 ECR이 일치단결해 저지에 나선다면 EU 차기 지도부 출범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BBC는 EU 회원국 외교관들을 인용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멜로니 총리와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U 집행위원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행위원 자리 중 핵심 요직을 일부러 이탈리아 인사에게 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