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발급받으셨죠?”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모(71)씨는 지난 27일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발급하신 카드를 지금 배송 중이다. 주소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이 맞냐”고 물었다. 김씨는 “카드를 발급받지 않았고 주소도 틀리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대는 “해외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돼 고객님 명의로 카드가 발급된 것 같다”며 “자신은 배송기사라 잘 모르니 현대카드 고객센터에 전화해 확인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콜센터 번호를 알려줬다.
김씨는 번호를 받아 적고는 배송기사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해당 번호로 전화를 하려다, 확인차 114에 먼저 전화해 현대카드 고객센터 번호를 물었다. 배송기사가 알려준 번호와는 다른 번호였다.
김씨는 자신이 알아낸 현대카드 콜센터 번호로 전화해 “방금 배송기사란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콜센터 번호를 알려주더라. 이런 번호를 쓰느냐”고 물었다. 상담원은 “전혀 관련 없는 번호”라고 답하면서 “최근 이런 전화가 자주 온다. 보이스피싱인 것 같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김씨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하니 급한 마음이 들더라. 그 번호로 전화를 했으면 얼른 확인하고 싶어 개인정보를 줄줄 불러줬을 것 같다”면서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처럼 신용카드 발급을 빙자한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명의 도용으로 카드가 발급된 것처럼 속인 뒤, 고객센터를 가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전화하면 “해결해주겠다”며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게한 뒤, 원격제어로 피해자 휴대전화를 조작해 금융앱을 통해 돈을 빼가는 수법으로 보인다.
실제 카드 배송기사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는 경험담을 소셜미디어(SNS)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한 네티즌은 “비자카드가 발급됐다고 해서 배송기사가 알려준 고객센터에 전화했더니, ‘이미 발급된 카드라 그냥 취소는 안된다. 개인정보 조회 후 취소 처리해줄테니 어떤 어플을 다운받으라’고 하더라”면서 “그때 아차 싶어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한 맘카페 회원은 “통화하면서 상담원이 시키는대로 어플을 깔았고 불러주는 번호를 적어 넣으려는 찰나, 혹시 보이스피싱 아닐까 생각이 들어 다시 전화하겠다고 하고 끊었다”면서 “(피싱범이) 끝까지 ‘다시 전화해서 자신을 찾으라’며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더라”고 말했다.
카드발급을 빙자한 문자 스미싱은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OO카드 발급 완료. 본인 아닐 시 확인 요망’, ‘OOO만원 해외 결제. 본인 아닐 시 확인 요망’ 등 내용 뒤에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링크로 남기는 식이다. 실제 이런 문자를 받고 전화를 걸어 시키는대로 했다가 피해를 본 사례가 지난해 7월 개소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에 다수 접수됐다.
배송기사인 척 전화를 걸어 앱을 다운받게 하는 보다 진화된 수법은 최근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해결해주겠다’는 친절한 접근에 속아 넘어가기 쉬우므로 금융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만일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다면 금융회사 및 112에 전화해 본인과 사기범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내계좌 통합관리’에서 피싱범이 내 정보로 통장을 개설했거나 대출을 받았는지 알아보고 필요시 일괄 지급 정지를 신청한다. ‘명의도용 방지서비스’에서 본인 모르게 개통된 휴대전화가 있는지 확인하고 추가 개통을 차단해야 하며,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개인정보 노출자’로 등록해 추가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카드발급, 해외 결제 등을 미끼 하는 보이스피싱이 늘고 있다”며 “늘 의심하고, 꼭 전화끊고, 또 확인하는 ‘늘·꼭·또’ 원칙을 주지해 금융사기를 방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보이스피싱 예방 원칙>
➊ 개인정보 제공 및 자금 이체 요청은 무조건 거절하세요
➋ 계좌번호나 비밀번호, 신분증 사진들을 휴대전화에 저장하지 마세요
➌ 제도권 금융회사의 전화번호는 한번 더 확인하세요
➍ 금융회사의 사전 예방서비스를 활용하여 안전하게 관리하세요
➎ 휴대전화 가입제한 서비스로 명의도용을 사전에 방지하세요
<자료: 금융감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