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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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셰리 와인과 한국 과하주의 역사 [명욱의 술 인문학]

최근 10년 사이에 위스키 시장을 견인한 제품군이 있다. 바로 셰리와인 오크통(캐스크) 숙성 위스키. 스페인의 주정 강화 와인인 셰리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숙성한 위스키다. 이렇게 셰리와인 캐스크에 담은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캐러멜, 바닐라 등의 맛이 더욱 화려하게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셰리와인은 브랜디를 추가로 넣어 도수가 높았으며 일반 와인보다 달콤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셰리와인 오크통 또한 그 맛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그 오크통을 사용한 브랜디도 맛이 화려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약 35억원에 낙찰된 위스키 ‘맥켈란 1926’. 셰리와인 오크통에 숙성한 것이 특징이다. 소더비

위스키에 셰리와인 캐스크를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18~19세기 스페인의 셰리와인은 영국으로 대량 수출하게 되는데, 오크통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원액을 다 사용한 오크통이 영국에 남게 됐다. 이렇게 남은 셰리와인 캐스크에 위스키를 담기 시작했다. 당시 위스키는 1823년까지 과도한 세금부과로 대부분 밀주형태로 유통됐는데, 이러한 밀주 유통에 남던 셰리와인 캐스크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로 인해 셰리와인 캐스크에 위스키를 저장하는 것이 스카치위스키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을 통해 독재정치를 구축한 스페인 정부는 유럽 국가들과 교류를 하지 않았고, 이후 셰리와인 캐스크는 영국 내에서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980년대 스페인이 EC(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에 가입하면서 오크통이 아닌 병으로 수출했고, 셰리와인을 오크통으로 수출하는 일은 거의 없어진다. 결과적으로 셰리와인 캐스크 숙성 위스키는 레어템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1926년에 증류한 60년 숙성 맥켈란위스키는 약 35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러한 스페인에 셰리와인이 있다면 한국에는 과하주가 있다. 발효주에 좋은 소주를 넣어 도수를 높여 저장성을 좋게 한 술이다. 과하주는 말 그대로 지날 과(過), 여름 하(夏), 술 주(酒)로 ‘여름을 슬기롭게 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하주의 가치를 살리고 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5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국가양주연구소(소장 류인수)에서 한국과하주진흥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이날 과하주 역사를 발표한 한국술문헌연구소 김재형 소장에 따르면 태종실록에서 그 명칭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소주를 넣었다는 내용은 1600년대 등장한 주찬방이라는 문헌으로, 이후 1670년 한글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서도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한국와인협회 김준철 회장은 이러한 주정 강화 술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보다 한국의 과하주가 더 빠르다고 언급한다. 포트와인은 1678년에 등장하지만 1840년대 이르러 그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되고, 1850년대에 보편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먼저냐는 역사적인 사실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쓰임과 유명도다. 셰리와인이나 포트와인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이 되었다는 것. 반대로 한국의 과하주는 1909년 순종 3년에 단행된 주세법에 청주·약주와 함께 등장하지만 이후의 주세법에서는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본보다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이 78년이나 더 빠른데 전 세계인들은 대부분 구텐베르크만 기억하고 있는 것과 같다. 이제는 우리 문화에서 상당 부분 잃어버린 과하주, 앞으로 어떻게 살리느냐는 우리의 몫이라고 본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넷플릭스 백스피릿의 통합자문역할도 맡았으며,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에는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