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 오늘 인천 강화군 해병대 2사단 해안 소초에서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군인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당일인 2011년 7월 4일 오전 11시 50분경, 당시 19세였던 김민찬 상병은 K2 소총을 탈취하여 병사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사건의 전개는 참혹했다. 김 상병은 당일 오전 7시 30분경 해안 소초에서 경계 근무를 서던 도중 편의점에서 소주 2병을 구입해 1병을 마셨다. 이후 그는 총기를 탈취한 뒤, 근처에 있던 간부 1명과 병사 1명을 먼저 총으로 쏴 쓰러뜨렸다. 이후 생활관으로 들어가 자고 있던 병사 2명에게도 총을 쏴 숨지게 했다.
총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병사 1명은 김 상병과 몸싸움을 벌였고, 그 와중에 총이 발사되어 이 병사는 고환 등 하반신에 총상을 입었다. 이 병사는 자대에 배치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이등병 권혁이었다. 권혁 이병은 김 상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어낸 뒤 쓰러졌다. 이 과정에서 다른 병사들은 아무도 권혁 이병을 도와주지 않았다.
권혁 이병의 아버지는 추후 해병대 가족모임 카페에 “선임 병사들 중 1명만 도와줬어도 내 아들이 총상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 병사들을 선임이랍시고 과자를 토하도록 먹이는 등 괴롭혔다는 게 분통이 터진다”라고 토로했다.
김 상병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정준혁 이병 또한 범행에 공모했으나, 김 상병의 총질로 쓰러진 병사를 목격한 뒤 김 상병을 피해 도망다녔다. 김 상병은 결국 생활관 옆 창고 근처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파편상을 입은 채 쓰러져 살아남았다.
수류탄 소리와 총소리가 나자 다른 생활관에서 쉬던 병사들은 생활관 밖으로 나와 부대 밖으로 도망쳤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해병대는 조롱을 받았다. 군인들이 총소리에 놀라 탈영을 한 것이고, 이는 군법에 따르면 중범죄에 해당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승훈 하사(당시 25세), 이승렬 상병(당시 20세), 박치현 상병(당시 21세), 권승혁 일병(당시 20세) 등 4명이 숨졌고, 권혁 이병(당시 19세)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군 당국의 수사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었고, 해병대 내의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기수열외, 성추행, 폭력, 허술한 총기 관리, 군무 이탈 등 해병대의 심각한 문제들이 낱낱이 밝혀졌다.
김 상병은 군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괴롭힘을 당했다. 구타와 욕설은 기본이었고, 성적 학대까지 수시로 당했다. 그는 7번이나 전출을 요구했으나 모조리 묵살당했다. 그러던 중 유일한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날 김 상병은 그의 군모에 소변이 담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그는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현재 육군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 상병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선후임들을 생각하면 유족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다”고 밝혔다.
한편 해병대는 사후약방문으로 ‘병영문화혁신 100일 작전’을 수립하고 이행한다고 밝혔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2022년에도 해병대에서 인권침해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병대 연평부대의 한 일병 역시 구타와 성적학대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