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 성남시에서 70대 노모와 40대 딸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모녀는 차상위계층으로 월 50만원에서 200만원을 벌었고, 공과금도 제때 납부해 위기가구로 포착되지 않았다. 올해도 충남 태안군에서 일가족 3명이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정부의 부단한 노력에도 기존 복지제도에서 이런 가구를 파악해 선제적으로 돕는 게 한계가 있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 이런 사건들이 반복되는 건 기존 복지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에 서울시는 ‘안심소득’이라는 새로운 복지제도를 2022년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기준 중위소득 85%에 미달하는 가구에게 그 미달하는 금액의 반을 지원하는 제도다. 일을 하면 할수록 처분가능소득이 증가하므로 일할 유인을 제공한다.
현행 복지제도에선 근로 능력을 따지고, 자가 주택, 금융자산, 자동차 같은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해 소득평가액에 포함하는 등 까다로운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22년 발생한 서울 종로구 창신동 모자 사건은 거의 100년 전에 지어진 허름한 집이지만 어쨌든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생계급여를 받을 수 없어서 죽음에까지 내몰린 경우다.
안심소득이 시행되면 근로 능력과 관계 없이 재산 기준만 충족하면 가구소득에 의해 지원 여부와 금액이 결정된다. 창신동 모자 사건 같은 불행한 일을 막을 수 있고, 복지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안심소득 시행 시 계층 간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과 지니계수가 지금보다 각각 24%와 9% 하락한다. 동일한 예산으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금액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5분위 배율은 6%, 지니계수는 3% 하락하는 데 그친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예산 36조8000원을 안심소득으로 써 기존 복지제도를 대체하면 실업률은 0.33%포인트 하락하고 국내총생산은 0.31% 증가한다. 반면에 동일한 예산으로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으로 기존 복지제도를 대체할 경우 실업률은 변화가 없고, 국내총생산은 오히려 0.06% 떨어진다. 안심소득이 기존 복지제도나 보편지급형 기본소득보다 소득격차 완화, 실업률 감소, 생산 증대 등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것이다.
부도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은 집이나 차가 있더라도 당장 소득이 끊긴다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들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는 누구나 절박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데, 안심소득은 이럴 때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끔 돕는다.
스타트업이나 벤처를 하고자 할 때 망설여지는 건 실패할 경우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해도 안심소득의 도움으로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다면 창업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이런 시도가 시장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므로, 안심소득은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 제2의 기회를 제공해 안심사회를 구현할 제도다. 중앙정부가 서울시의 시범사업 결과를 참고해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박기성 안심소득학회장·성신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