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뉴진스가 지난달 26·27일 K팝 사상 최단 기간 일본 도쿄돔에 입성해 9만명을 동원하는 팬 미팅 공연을 연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특히 이 공연에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1980년대 일본 버블 호황기를 상징하는 마쓰다 세이코의 ‘푸른 산호초’를 커버해 일본 현지를 뜨겁게 달궜다. 이 무대는 한국의 음악팬까지 사로잡으며 6일 만에 유튜브 조회수가 400만회에 육박하며 화제를 낳고 있다.
이런 소식 뒤에 아쉬운 이면도 존재했다. 뉴진스가 도쿄돔 공연에 앞서 발매한 최신 앨범이 K팝이 아닌 J팝(일본 음악)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 네이버 바이브와 애플 뮤직 등 주요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뉴진스가 지난달 21일 발표 일본 데뷔 앨범인 ‘슈퍼내추럴(Supernatural)’이 ‘J팝’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앨범이나 노래 장르는 가수의 소속사가 음반·음원 유통사에 특정 장르로 표기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결정된다. 즉 소속사 어도어에서 J팝으로 명시한 것이다. K팝 가수들이 일본에서 앨범을 발매할 때 장르를 J팝으로 분류하는 경우는 다소 있다. 하지만 이는 가사가 일본어로만 이뤄져 있을 때 대부분 해당한다.
반면 뉴진스의 이번 앨범에서는 타이틀곡 ‘슈퍼내추럴’은 물론이고 수록곡 ‘라이트 나우(Right Now)’에 한국어가 포함돼 있다. 일본어와 영어가 가사에 다소 있지만 한국어가 차지하는 비중(5분의 1 이상)이 작지 않다.
더불어 ‘라이트 나우’ 뮤직비디오는 “주말에 뭐 해?”, “같이 영화 보는 건 어때?”라고 스마트폰에서 한국어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화면과 함께 “언니 지금 안 보내면 후회해요” 등 멤버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국 가수의 한국 노래(K팝)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어도어가 ‘슈퍼내추럴’에 대해 소개할 때도 ‘노스탤지어 감성과 멤버들의 부드러운 보컬이 돋보이는 뉴 잭 스윙 스타일의 노래’라고만 했지, J팝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팝스타 퍼렐 윌리엄스가 2009년 일본 가수 마나미와 합작한 ‘백 오브 마이 마인드(Back of My Mind)’에서 애드리브와 브리지를 따와 한국인 프로듀서 250(이오공)이 재해석했다’고만 설명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노래를 비롯해 앨범을 ‘J팝’이 아닌 ‘K팝’으로 등록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대중음악 평론가는 “일본 데뷔 앨범이기 때문에, 일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J팝으로 내놓은 것 같은데 너무 자세를 낮춘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며 “뉴진스 팬덤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없는 것도 아니고, K팝의 위상이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는데도 한국어가 포함된 노래를 J팝이라고 표기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가수의 문제보다 뉴진스를 매니지먼트(관리)하는 회사의 문제”라며 “일본이 세계 제 2의 음반시장이고 뉴진스가 도쿄돔 팬미팅도 하는 등 당장 돈이 되는 곳이 일본이지만, K팝의 위상과 한국 팬들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아무리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더라도 뉴진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이라며 “그런 부분에서 세계인들에게 K팝을 알려줘야 하는데, 오히려 J팝이라고 표기한 것은 다른 나라 팬들이 보기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 등 대중가요를 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한국어가 포함된 노래는 K팝으로 표기한다”며 “심지어 영어로 노래를 불러도 K팝으로 하고 있는데, 한국어가 섞여 있는데도 J팝이라고 분류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글로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0년 발표한 ‘다이너마이트(Dynamite)’는 오롯이 가사가 영어로 돼 있지만, 애플 뮤직 등에 따르면 K팝으로 분류돼 있다. 이들이 일본에서 2016년에 발표한 ‘유스(YOUTH)’, 2020년에 공개한 ‘맵 오브 더 솔 : 7 ∼ 더 저니 ∼(MAP OF THE SOUL : 7 ~ THE JOURNEY ~)’ 등도 수록곡이 일본어로 돼 있음에도 K팝으로 등록돼 있다.
이에 대해 어도어 측은 “일본 음방 활동을 위해서 일본 음반으로 낸 것이고, 더 많은 팬이 쉽게 접근하기 위해 글로벌 유통을 선택한 것”이라며 “미디어의 발달로 유통이 다변화되고 콘텐츠가 빠르게 전파되는 환경에서, J팝과 K팝의 장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