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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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참사’ 가해자, ‘한 개 범죄로 처벌 가능성’ 왜?…유사 판결 보니

‘상상적경합’ 따라 최고 금고 5년 전망
유사 사건 운전자들도 금고형 처해져
법조계 “대안 입법 논의 적기” 지적
美선 8명 숨지게 한 운전자 징역 60년

시민 9명이 목숨을 잃고 6명을 다치게 한 서울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 가해자는 향후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현행법상 하나의 범죄로만 의율해 금고형에 처해질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고와 같은 ‘다중 인명 피해 범죄’를 가중 처벌할 수 있는 입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4일 서울 중구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 현장에 시민들이 두고 간 국화꽃과 술, 편지 등이 놓여 있다. 최상수 기자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새변)은 3일 성명에서 “형법상 한 번의 운전으로 여러 명을 동시에 사상하게 한 경우는 수 개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어 한 개의 죄로 평가돼, 선고 가능한 최고 형량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 공분을 산다”고 밝혔다.

 

가해자 차모(68)씨가 경찰에 입건된 혐의인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의 법정형은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한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면 가장 무거운 죄에 대해 정한 형으로 처벌하는 형법의 상상적 경합에 따라, 차씨는 이 혐의로만 기소되면 최고 금고 5년을 선고받게 된다. 금고는 징역처럼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강제 노역을 하지 않는다.

 

새변은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여러 개의 죄가 성립하고, 지난달 텍사스주에선 버스 정류장에 돌진해 8명을 숨지게 한 운전자가 1심에서 징역 60년을 선고받았다”며 대안 입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미국인은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됐는데, 사망자 각각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4일 서울 중구 시청역 ‘차량 돌진 참사’ 현장에 한 시민이 사망자 9명의 넋을 기리며 각각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연 새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선 그간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범죄에 대해 형량 가중이 너무 적게 이뤄져 왔다”며 “2016년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다중 인명 피해 범죄의 경합범 가중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안’을 다시 논의하되, 양형 기준에서 법원에 폭넓은 재량을 주는 식이 어떨까 한다”고 제안했다. 박근혜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회에 제출했던 이 법안엔 ‘한 개의 행위로 다중 인명 피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 각 죄에 정한 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 이외의 동종의 형이면 각 죄에 정한 형의 장기 또는 다액을 합산해 가중함으로써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이 선고될 수 있게 한다’는 처벌 특례가 있었다.

 

시청역 참사처럼 과속 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내고 급발진을 주장한 다른 운전자들도 금고형에 그쳤다. 급발진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5월 충북 음성군에서 인도로 돌진해 미성년자 2명의 목숨을 앗아 간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올해 2월 2심에서도 금고 4년을 선고받았다.

 

2021년 서울에서 야간 대리운전을 하다 과속해 차량 뒷좌석에 있던 50대 여성이 숨지고 3명을 다치게 한 B씨에겐 지난해 2심에서 금고 8개월이 선고됐다. B씨는 “차량이 급발진했을 뿐 아니라 제동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등을 근거로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음에도 엔진 출력이 급상승하는 현상은 그 자체로도 매우 이례적인데, 브레이크를 밟았음에도 차량이 전혀 제동되지 않는 현상까지 겹쳐 일어날 확률은 더더욱 낮다”고 일축했다. 차씨 아내도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가 안 들었다”고 진술했다.

 

2021년 청주에서 야간에 인도를 침범해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를 들이받고 걸어가던 50대 남성을 사망에 이르게 한 C씨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이 확정됐다.


박진영·이종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