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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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만에 푼 ‘승부차기의 저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1998년 월드컵 당시 개최국 프랑스는 강력한 우승 후보로 조별 리그부터 16강전까지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8강전에서 이탈리아와 만나며 처음 위기를 겪는다. 두 나라 다 수비 위주 축구를 구사하다 보니 연장전까지도 골이 터지지 않아 0-0으로 끝났다. 이후 시작된 승부차기에선 프랑스가 이탈리아를 4-3으로 꺾고 4강에 올랐다. 사기가 충천한 프랑스는 준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를, 결승전에선 브라질을 각각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6일(한국시간) 유로 2024 대회 8강전에서 프랑스 선수들이 승부차기 끝에 포르투갈을 꺾고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프랑스가 월드컵, 유로 등 이른바 메이저 대회 승부차기에서 웃은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 됐다는 점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지네딘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는 결승에 올라 이탈리아와 우승컵을 놓고 다퉜다. 연장 접전 끝에 1-1로 비긴 두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키커 전원이 골을 성공시킨 이탈리아가 1명이 실축한 프랑스를 5-4로 눌렀고, 프랑스는 아쉽지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이후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1년 늦게 열린 유로 2020 대회 16강전에서 프랑스는 스위스와 만나 연장전까지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승부차기 결과는 역시나 프랑스의 4-5 패배, 그리고 토너먼트 탈락이었다.

 

프랑스와 승부차기의 지긋지긋한 악연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까지 이어졌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차세대 축구 황제’ 킬리안 음바페가 앞장선 프랑스는 연장전까지 세 골씩 주고받으며 3-3으로 비겼다. 그런데 또 징크스가 도졌다. 승부차기에서 프랑스 키커 2명이 연달아 실축한 것이다. 출전 선수 모두가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킨 아르헨티나가 4-2로 승리를 따냈다. 음바페는 다음 월드컵을 기약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다.

 

6일(한국시간) 유로 2024 대회 8강전에서 프랑스가 포르투갈을 꺾고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뒤 프랑스 대표팀 디디에 데샹 감독(왼쪽)이 주장 킬리언 음바페 선수를 끌어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로 2024에 출전 중인 프랑스가 6일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 끝에 5-3으로 승리해 준결승에 진출했다. 로이터 통신은 프랑스가 메이저 대회 승부차기에서 이긴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때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 선수로 출전했던 디디에 데샹이 이번에는 프랑스 대표팀 감독 자격으로 승부차기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데샹은 2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 듯 “그래, 난 알아. 내가 거기에 있었거든”이라고 외쳤다. 다만 프랑스와 결승 진출을 놓고 다툴 상대방은 8강전에서 ‘전차군단’ 독일을 무너뜨린 ‘무적함대’ 스페인이다. 프랑스의 행운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