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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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의세계속으로] 보수당 14년과 영국의 표류

EU서 스스로 탈퇴해 ‘외교적 외톨이’ 신세
새 총리 스타머의 노동당 정부 정책 주목

7월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확하게 248년 전인 1776년 미국의 13개 식민지 대표가 모여 영국으로부터 독립선언문을 비준했다. 올해 같은 날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참패하면서 14년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우연이 종종 선사하는 흥미로운 일정의 만남이다. 18세기 당시 미국이 볼 때 독립은 영국의 관점에서 반역과 배신이었고 비극적 민족 분단이었다. 같은 조상을 둔 영국인들이 이제는 대서양 건너에 따로 나라를 차리겠다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수백년 전 미국의 독립은 ‘민족상잔’의 전쟁을 통해 쟁취되었으나 21세기 민족 형성과 해체의 정치는 다행히도 국민투표나 선거, 협상을 통해 이뤄진다. 과거 미국이 영국의 지배와 간섭에서 벗어나려 했듯 21세기 유럽에서도 큰 단위의 정치 지배에 대한 반발은 잦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의 회원국 영국은 유럽의 간섭과 지배에 불만인 사람이 많았다.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는 영국의 개입과 지배를 싫어하는 계층이 상당했다.

2010년에 집권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스코틀랜드를 영국에 묶어두고, 영국도 유럽에 단단히 엮어 놓으려는 계획이었다. 2015년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독립 관련 국민투표를 했고 그 결과 55%가 독립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1707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국을 하나로 합쳤던 역사적 합의를 국민투표를 통해 확인하고 지켜낸 셈이다.

그러나 이듬해 치러진 EU에 관한 국민투표에서는 52%가 탈퇴를 결정함으로써 캐머런의 계획은 틀어졌고, 작게는 보수당 정권, 크게는 영국과 유럽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수백년 계속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연합에 비해 영국과 유럽 관계는 1973년에야 공식적으로 맺어져 역사가 짧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40년 넘게 영국과 유럽 대륙이 만든 관계의 그물은 촘촘했고 그만큼 결별은 고통과 피해를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6년 동안 영국을 주도했던 캐머런이 브렉시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보수당은 2017, 2019, 2024년 세 차례의 총선을 치렀고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등 4명의 총리가 역임했다. 지난 8년 동안 영국의 집권 보수당은 분열되어 대립하는 형편없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고, 2020년 EU에서 공식적으로 나갔으나 탈퇴가 가져올 것이라던 혜택과 이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다만 자본과 인재만 영국을 떠나 유럽 대륙으로 이동 중이다.

이처럼 2024년 7월4일 영국의 총선은 2016년 영국이 EU로부터 탈퇴를 결정한 일명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긴 결말에 해당한다. 2010년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영국은 EU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강대국이었고 경제 수준도 독일에는 뒤지지만 프랑스와 비슷했다.

14년 뒤 영국은 이제 유럽에서 스스로 뛰쳐나온 외교적 ‘외톨이’가 되었고 미국이나 독일과 경제 격차는 벌어진 반면 아래서 치고 올라오는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이 위협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영국의 평균 수명은 바닥으로 떨어져 유럽 후진국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650석 가운데 400석 이상을 획득해 대승을 거둔 키어 스타머의 노동당 정부가 영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궁금하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