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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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하듯… 그림 속 숨겨진 이야기를 찾다

이명미의 특별한 드로잉展

70년대 韓 실험미술운동 1세대 작가
소녀의 흐릿한 눈… 그려지지 않은 입…
드로잉 통해 관람객에 끊임없이 질문
일상 속 놓치고 있는 변화 깨닫게 해

“뭐야? 꼬마 아이들이 끄적거린 건가?”

작가 이명미(74)는 마치 유아기의 어린아이가 그렸을 법한 과감한 화면을 시도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이런 그림도 현대미술에선 통한다’를 입증한 파격적이자 선언적인 전위다.

‘꽃 그리기’(56x76.5cm, 2024)

그는 이우환, 박서보 등과 함께 1970년대 한국 실험미술운동 1세대 작가에 속한다. 당시 전위예술은 지극히 남성중심의 미술운동이었던 탓에 소수의 여성작가만 활약했다. 설치나 퍼포먼스가 주류를 이루던 경향 속에서도 이명미는 70년대와 80년대, ‘여성작가’가 견뎌야 했던 근대와 현대 두 세계의 패러다임을 일관된 주제와 어법으로 지금껏 풀어오고 있다. 이명미는 한국현대미술사 속에서 ‘여성작가’의 역할과 계보를 연구할 때 첫 번째로 꼽아야 하는 몹시 중요한 인물이다.

작품 속 소녀의 흐릿한 눈과 간단한 코, 그리고 그려지지 않은 입…,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실이 항상 눈앞에 있으면서도 결코 잡히지 않는 것처럼, 그의 드로잉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대상이 인식되기 직전의 찰나를 포착해,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본질을 교란시킨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평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세계의 미묘한 변화를 깨닫게 하는 통찰의 도구가 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의 그림 속에 숨어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느낌이 엄습한다.

그의 드로잉은 단순한 선과 색의 조합이 아니라, 우리가 한눈을 팔 때마다 형태가 바뀌고 새로운 의미가 드러나는 미로와도 같다. 작가는 날마다 드로잉을 통해 꾸준히 변화하는 세계를 탐구한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모든 것이 조건에 따라 움직이고 뒤바뀌며, 고정된 형태라곤 하나도 없다. 마치 우리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려 할 때마다 그것이 살짝 비껴가는 것처럼, 이명미의 드로잉은 경계 사이에서 생동감 넘치는 춤을 춘다.

‘숨바꼭질: Hide and Seek(하이드 앤드 식)’이라는 문패를 단, 이명미의 특별한 드로잉전이 27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피앤씨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Landscape’(풍경·조경사,78x106.5cm,2024)

그의 작품이 가진 위트와 철학을 드로잉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내며, 관람객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추구하는 경계의 미학을 알리고 나선다. 드로잉은 그의 가장 가깝고도 신선한 끄적임으로, 일상을 떠도는 재료들 가운데서 생생한 감각과 풍부한 지각을 순식간에 낚아채는 최전선의 현장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숨바꼭질 놀이처럼, 관람객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명미의 독창적인 시선을 타고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그의 드로잉 속 숨바꼭질은 일상 속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고, 이미 익숙해진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일깨운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