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요 시·도가 추진하고 있는 ‘메가시티’ 열풍 대열에 호남권도 합류했다.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관영 전북도지사,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최근 전북 정읍에 모여 ‘호남권 메가시티 경제동맹’을 선언했다. 이들 시·도지사는 2017년 이후 7년 만에 열린 호남권 정책협의회에서 ‘지역소멸 위기 대응과 수도권 일극체제에 맞서 호남권 초광역 협력체제를 구축하자’고 합의했다. 500만명의 호남권 경제 활성화와 상생 발전을 위해 메가시티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올 들어 전국의 광역자치단체가 역사·행정·경제적으로 한뿌리인 점을 내세워 서로 협업·통합 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메가시티 열풍이 불고 있다. 대전·세종·충북·충남 4개 시·도는 올 5월 이미 충청지방정부연합의 닻을 올렸다. 영남권도 마찬가지다.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이 행정통합의 걸음마를 뗀 상태다. 인구절벽·지역소멸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뭉쳐야 산다”는 비수도권 광역자치단체들의 외침이 주민 설득과 동의,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등의 난관을 극복하고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광역단체들 행정·경제 테마로 이합집산
전국 광역단체들에 메가시티라는 불을 지핀 곳은 대구·경북이다. 올 5월 홍준표 대구시장의 대구·경북 행정통합 제안에 이철우 경북지사가 수용하면서 대구와 경북이 분리된 지 40년 만에 통합 논의에 불이 붙었다. 윤석열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에 대구·경북 지역의 행정지도를 다시 그리는 통합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 지원 의지를 밝힌 만큼 향후 특별법 제정과 구체적 권한 이양 및 재정 인센티브와 같은 메가시티 모델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행정통합을 위해 올해 말까지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6년 7월 통합자치단체를 출범시킨다고 청사진을 내놓았다. 현재 두 시·도는 각각 행정통합을 추진하는 TF(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통합안을 만들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달 ‘대구·경북 행정통합 추진단’을 구성해 획기적인 통합 방안 마련에 나섰다. 경북도는 최근 행정통합 민관합동추진단 자문회의를 갖고 다양한 의견 수렴과 지역발전전략 구상에 착수했다.
부산시와 경남도 역시 행정통합을 서두르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9월까지 부산·경남 행정통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산과 경남은 660만명에 달하는 메가시티를 구축해 수도권에 대응하는 지방의 중심축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내년 상반기에 여론조사를 실시해 시·도민들 의사를 묻기로 했다. 두 단체장은 2022년 9월 그동안 추진해 왔던 부·울·경 특별연합을 파기하고 행정통합을 선언했다.
충청권의 메가시티는 밑그림이 완성된 상태다. 행정안전부가 대전시와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4개 시·도를 하나로 묶는 ‘충청지방정부연합’ 설치를 승인했다. 전국 첫 특별지방자치단체가 12월 이전에 공식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 행정협의회에서 통합 논의가 시작된 지 12년 만의 결실이다. 충청권 메가시티는 대구·경북, 부산·경남의 행정통합과는 달리 하나의 광역생활경제권을 지향한다. 충청지방정부연합은 550만명으로 경기와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광역지자체가 된다.
호남권의 메가시티는 통합의 가장 낮은 단계인 경제동맹이다. 전북도가 특별자치도가 되고, 전남도도 특별자치도를 추진해 호남권의 행정통합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초광역교통망 확충과 이차전지 등 초광역 협력사업 발굴 수준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광주시는 경제동맹을 호남권 행정통합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가지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태다.
메가시티는 수도권 일극체제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지방 생존전략’으로 통한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행정학)는 “수도권 인구가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더 수도권으로 몰리고 지방은 인구 소멸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행정통합은 수도권 일극체제 대응과 국가균형발전 차원의 지방의 생존전략”이라고 단언했다.
◆재정·입법권 확보…중앙권한 이양이 관건
광역 지자체의 메가시티 추진에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지역민들의 동의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광역단체장들이 수도권 일극체제에 맞서 메가시티를 추진하고 있지만 갑작스러운 통합 논의에 부정적인 민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해 경북 북부지역에서는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도청 신도시 개발 2단계 사업이 막 시작된 상황에서 행정통합이 추진되면 사업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부산·경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부산과 경남 주민 각 2000명씩 4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행정통합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45%에 달했다. 통합에 부정적인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행정통합의 방식도 풀어야 할 과제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경북을 통째로 대구와 합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테면 경북 지자체를 대구광역시에 포함하는 방식의, 예컨대 대구광역시 안동시, 대구광역시 포항시 등으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대구시와 경북도 행정통합의 체제를 현행 3단계에서 2단계로 축소하는 안이라는 게 대구시 설명이다.
메가시티의 목표는 ‘완전한 지방자치 모델’이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중앙정부의 모든 권한을 지방정부가 넘겨받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수도권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정부가 필요한 사업의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집행하는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메가시티의 목적이 있다.
이 때문에 광역 지자체의 메가시티 성패는 얼마나 지방정부가 재정권과 입법권을 확보하고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가져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는 광역 지자체가 업무에 필요한 부시장(부지사)직을 신설하고 싶어도 행안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광역 지자체가 통합해 메가시티를 조성하면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게 된다. 이 특별법에 지방정부의 재정과 인사, 조직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내용을 담아야 실질적인 지방분권이 가능하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방정부의 재정과 인사권을 보장받는 연방제 수준의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여야 국회의원들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메가시티가 성공하려면 현행 지방자치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치국 광주연구원장은 “특별연합이든, 행정통합이든 메가시티 성공의 전제조건은 특별법 제정”이라며 “재정권은 물론 인사권, 입법권을 연방제 수준으로 법에 명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