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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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문 닫고, 대학원생은 살길 찾아 떠나

정부 R&D 예산 삭감 일파만파

연구과제 의존도 높은 벤처社 ‘직격탄’
석·박사급 고학력 인재들 덩달아 피해
업계 종사자 ‘비자발적 실직’ 대폭 늘어

“정부 연구과제로 기술을 키우던 바이오벤처는 문을 닫고 대학원생들은 일자리를 잃고 외국 회사로 살길 찾아 떠나고 있다.”

한 국립대 바이오 관련 학과에 재직 중인 교수가 8일 현재 과학계의 상황을 설명하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정부가 내년에는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릴 거라고 하지만 해외에 자리 잡은 인재들이 한 번에 돌아오겠냐”며 “이번 한 해 예산 삭감이 과학계를 4∼5년 정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폭 삭감된 R&D 예산 여파로 연구 과제 의존도가 높은 벤처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떠밀리는 분위기다. 덩달아 벤처기업에서 일하며 글로벌 선도 사업자가 되려던 석·박사급 연구원과 이들과 산·학(産·學) 협력을 통해 비상을 꿈꾸던 대학 연구실 소속 고학력 대학원생 등도 피해를 입고 있다.

이날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벤처기업확인기관에 따르면 정부에 등록된 벤처기업의 수는 올해 넉 달 연속 감소해 6월에 3만8605개가 됐다. 벤처기업은 2022년 말부터 점차 늘어나 지난해 12월 4만곳에 도달했으나 하락을 거듭한 결과 다시 3만8000대로 떨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표면적으로 줄어든 벤처기업의 숫자보다 실제 피해는 더 클 거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폐업 상태임에도 폐업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나 수행 중인 연구가 끊겨 인력을 대폭 줄인 벤처기업이 다수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가 밀고 있는 원자력, 반도체 등의 분야를 제외하고 분야를 좁혀서 볼 경우 피해는 더 크리라는 것이 과학계의 주장이다.

제동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노조위원장은 “ETRI의 기존 사업은 24% 삭감됐는데 이 가운데 윤석열정부에서 요구하는 분야의 경우 신규로 사업이 늘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R&D 예산 삭감 여파는 인력 부분에서 더 확연히 드러난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통계청 고용동향 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종사자 중 비자발적 실직자가 올해 초부터 전년 같은 달보다 매달 3000명 이상씩 늘어나고 있다.

비자발적 실직자란 직장의 휴업·폐업, 명예퇴직·조기퇴직·정리해고, 임시적·계절적 일의 완료, 일거리가 없어서 또는 사업 부실 등 노동 시장적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을 뜻한다.

황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기술 서비스업 비자발적 실업자는 올해 1월 2만8673명에서 2월 3만133명, 3월 3만3127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000여명씩 증가했다. 올해 5월에는 2만9603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비자발적 실직자가 2446명이 늘어났다.


채명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