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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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극우 돌풍’ 막았지만… 과반정당 없어 정국 혼란 불가피

‘反극우연대’ 총선 대역전

결선서 좌파연합 182석 확보 1위
집권당 2위… 선두 RN 3위 추락

범여권·좌파연합 단일화에 이변
“청년이 저지” “佛은 이민자 나라”
유권자 수천명 광장서 승리 자축

마크롱 조기 총선 승부수 놓고
“佛 혼돈에 빠뜨려… 절반의 성공”
최연소 아탈 총리 반년 만에 사의
급진파 NFP대표 차기 지명 주목

‘관용의 나라’(tolerance·톨레랑스) 프랑스 국민이 반(反)이민주의 등을 내세웠던 극우 돌풍을 표심으로 잠재웠다.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에서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예상을 뒤엎고 전체 하원 의석 577석 중 182석을 차지해 1당에 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중도 범여권 앙상블(ENS)이 168석을 얻어 2위, 극우 국민연합(RN)과 그 연대 세력은 143석으로 3위에 그쳤다. RN과 연대하지 않은 우파 공화당은 45석, 기타 우파 15석, 기타 좌파 13석, 기타 중도 정당 6석, 지역주의 세력 4석, 기타 정당 1석 등으로 최종 집계됐다.

승리자축하는 佛 시민들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투표에서 예상을 뒤집고 1차 투표에서 선두였던 극우 국민연합(RN)이 3위로 밀려나자,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프랑스 국기 등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레퓌블리크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동상 위로 올라가 ‘프랑스는 이민자로 이뤄진 나라’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대형 국기 등을 내걸었다. 파리=AFP연합뉴스

‘반극우연대’의 대반전은 앞선 1차 투표 이후 좌파 연합과 범여권 사이 연대가 주요했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에서 RN과 그 연대 세력이 33.2%로 1위에 오르자 NFP(28%)와 ENS(20%)는 대대적인 후보 단일화 과정을 거쳤다. 극우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유권자들의 막판 결집도 한몫했다. 이날 최종 투표율은 66.6%로, 2022년 총선 2차 투표 때보다 20.4%포인트 높았다. 지난달 30일 1차 투표율(66.7%)과 비슷한 투표 참여율이다.

 

좌파 연합 NFP를 이끈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유권자들이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 좌파 연합의 승리를 만들어냈다”며 환영했다.

 

멜랑숑 대표는 “우리 국민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분명히 거부했다. 국민의 과반수가 극우 세력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며 “오늘의 결과는 수백만 명의 국민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35세로 지난 1월 최연소 총리에 올랐던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는 8일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반년만에 사의를 표했으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탈 총리에게 “국가의 안정을 위해 당분간 총리직을 유지해 달라”고 말했다고 엘리제궁은 밝혔다.

 

이날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극우 세력에 반대해온 젊은 유권자 등 수천 명이 모여 깃발을 흔들며 승리를 자축했다고 CNN방송이 전했다. 이들은 반극우 시위 구호로 쓰이는 문구인 “젊은이들이 국민전선(FN)을 저지한다”를 연호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레퓌블리크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동상 위로 올라가 ‘프랑스는 이민자로 이뤄진 조직’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대형 국기 등을 내걸었다.

◆마크롱 ‘도박’ 절반의 성공… 혼란 예상

 

주요 외신들은 반극우연대의 대역전극으로 끝난 프랑스 총선 결과를 두고 ‘충격적’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도박’이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고 평가했다. 다만 어느 정치세력도 과반(289석)을 달성하지 못해 향후 정부 구성 및 의회 운영 과정에서 혼란이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AP통신은 “좌파 연합이 중차대한 프랑스 총선에서 극우 돌풍을 격퇴하며 승리했지만,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다”며 ‘헝 의회(Hung Parliament)’와 함께 교착 상태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헝 의회란 의원내각제 정부 체제에서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상태(Hung)의 의회를 뜻한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믿기 힘든 결과’라면서 “아마도 프랑스 선거 역사상 가장 놀라운 결과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번 선거로 “의회가 세 개의 파벌로 분열되면서 정치 상황이 더 혼란해질 것”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나라 중 하나인 프랑스가 끊임없는 변화의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전망했다.

 

CNN방송은 마크롱의 ‘도박’이 극우의 권력 장악을 막았으나 프랑스를 혼란으로 빠트렸다고 짚었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선거 결과가 ‘충격적’이라며 “프랑스 정치권이 더 큰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됐다”고 진단했다.

 

BBC방송은 “극우의 집권을 막기 위해 유권자들이 투표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프랑스인들이 다시 한번 극우의 집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례적 출마 올랑드 前 대통령 당선 확정 프랑스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가운데)이 7일(현지시간) 중부 도시 튈에서 당선 확정 소식을 듣고, 지지자들과 축하하고 있다. 올랑드 전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전임자로 2012∼2017년 집권했다. 그는 극우 집권만은 막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전직 대통령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총선에 출마해 화제를 모았다. 튈=AFP연합뉴스

◆극우 대신 극좌 총리 나올까

 

제1당으로 도약한 NFP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 멜랑숑 대표가 차기 총리 자리에 오를지도 주목된다. 멜랑숑 대표는 “좌파 연합은 집권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정부 운영에 나설 뜻을 밝혔으나,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은 전통에 따라 의회에서 전체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극좌 정당 LFI에 정부 운영을 맡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공언해왔다. 급진적 사회주의 성향으로 평가되는 멜랑숑 대표를 두고 좌파 연합 내 다른 정파뿐만 아니라 LFI에서도 사회분열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퓰리스트 웅변가’로 불리는 멜랑숑 대표는 사회주의자로서 급진적 분배정책을 강조해왔다. 과거에는 프랑스를 ‘부(富)가 잘못 분배된 국가’로 규정하거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악마화하는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2017년, 2022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좌파를 대표해 대통령 선거에 나섰으나 매번 고배를 마셨다.

 

의회 권력 장악을 눈앞에 뒀던 극우 정당 RN은 다시 한번 프랑스 정치권의 높은 벽을 실감했으나, 결과적으로 약진했다. RN의 실질적 지도자인 르펜은 이날 프랑스 TF1 방송에 “우리 승리는 늦춰졌을 뿐”이라고 밝혔다. 르펜은 “마크롱 대통령과 극좌의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아니었다면 RN이 절대 과반이었을 것”이라며 “(극우의) 조수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의원 수를 두 배로 올렸으니 실망할 것 없다”고 강조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