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해법 모색의 접점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의 올해 초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90도 인사’는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짚었다.
조 전 대표는 8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서 “이미 문자를 보내고 읽지 않는 시점에 상당한 긴장이 있었다”며 “그러다가 한 번 봉합되지 않나, 눈 오는 날에 머리 숙이는”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진행자의 ‘90도 폴더 인사’ 반응에 그는 “그게 봉합될 사안이 아니었음이 이번에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한 후보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던 올해 1월23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특화시장에서 윤 대통령을 만났다. 현장 점검에 앞서 윤 대통령이 한 후보의 어깨를 툭 치고, 눈보라 속에 15분을 기다린 한 후보가 윤 대통령을 향해 거의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 나누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한 후보는 윤 대통령 권유에 따라 대통령 전용열차로 서울에 돌아왔고, 서울로 돌아온 그는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냐’는 기자들 질문에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답을 대신해 윤 대통령과의 대척점에 있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와 함께 ‘여러 민생 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던 설명은 양측이 갈등 국면으로 비쳤던 사안을 털어내고 협력에 매진하겠다는 메시지로도 읽혔다.
다소 전격적인 만남으로 비쳤지만 양측이 모두 당일 오전 일정을 조정했고 상경 중 속 깊은 대화가 이뤄졌다는 후문 등을 토대로, 김 여사 논란을 확전으로 치닫지 않게 하려는 의지라는 해석에도 무게가 실렸다. 인사 후 함께 현장을 둘러본 모습은 갈등 봉합의 상징적인 장면으로도 인식됐다.
다만, 이때도 일각에서는 한 후보와 윤 대통령의 온전한 봉합까지 불씨가 남았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양측이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해법을 통일하지 못하면 언제든 갈등이 고개를 다시 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후보는 명품 가방 논란에 ‘국민 눈높이’를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이 시기는 명품 가방 수수 의혹 관련 당정 갈등 국면에서 김 여사가 다섯 차례에 걸쳐 한 후보에게 문자를 보낸 한복판이기도 하다. 종합편성채널 TV조선이 지난 8일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김 여사는 올해 1월15~25일에 5회에 걸쳐 한 후보에게 문자를 보냈다.
김 여사는 1월15일 첫 문자에서 한 후보에게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라며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김건희 특검법’ 거부권 행사 열흘이 된 시점이다. 메시지로 미뤄 윤 대통령과 한 후보 사이에 ‘김건희 특검법’ 문제 갈등을 짐작하게 하는데, 김 여사는 문자에서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다. 한 번만 브이(윤 대통령)와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실지요”라고 제안했다.
김 여사는 같은 날 두 번째 문자에서 “모든 게 제 탓”이라며 “제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이런 사달이 나는 것 같다. 죄송하다”고 말했고, 사흘 후 한 후보는 김 여사 의혹에 “국민들이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 일부에서 김 여사 책임론 언급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이보다 하루 앞서서는 김경율 당시 비대위원이 김 여사를 프랑스 혁명 당시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 논란이 일었다.
같은 달 19일 세 번째 문자에서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번 만번 사과하고 싶다”고 김 여사는 말하면서도,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 하는 것뿐”이라며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다”고 적었다.
한 후보가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은 지 이틀 뒤인 23일 네 번째 문자에서 김 여사는 “제가 댓글팀을 활용해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다”고 말했다. 한 후보를 ‘동지’로 일컬으면서는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고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다”고 썼다.
김 비대위원의 워딩에 ‘가슴이 아팠다’면서도 이해 의사를 전한 김 여사는 “제가 너무도 잘못한 사건”이라며 “저로 인해 여태껏 고통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의 노고를 해치지 않기만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위원장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제가 단호히 결심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김 여사는 25일 마지막 문자에서 “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마음 상하셨을 거라 생각한다”며 “큰마음 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주셨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고 적었다. 계속해서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며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며 오해를 푸셨으면 한다. 정말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공적 채널로 당정 간 논의가 이뤄지던 상황에서 사적 소통은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한 후보는 김 여사 문자에 답하지 않았는데, 이는 6개월 후 ‘읽씹(읽고 무시)’ 논란으로 확산했다.
조 전 대표는 라디오에서 김 여사와 한 후보 사이에 ‘궁중 암투’ 수준의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하고, 양측의 화해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진다고 봤다. 그는 “한동훈씨가 집권여당 대표가 된다면 이분의 주도하에 2년 후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게 될 것인데, 이것을 윤석열, 김건희 두 분이 용납할 것인가”라며 ‘한동훈 당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거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