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채 상병 특검법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취임 후 8번째, 법안 건수로는 15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특검법이 공포될 때까지 계속 추진하겠다고 벼르는 한편 김건희 여사를 윤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여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미국을 순방 중인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채 상병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하와이 현지에서 재가했다고 대통령실이 전했다. 대통령실은 “전날(8일)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로 실체적 진실과 책임 소재가 밝혀진 상황에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특검법은 이제 철회돼야 한다”며 “나라의 부름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해병의 안타까운 순직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정부는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지난 4일 야권이 강행 처리한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월 정부가 재의 요구한 법안보다 위헌성이 가중됐다. 특검 임명 간주 조항과 재판 중 특검의 공소 취소 권한은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반한다”며 “법안 추진 목적이 진상 규명이 아니라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다는 프레임을 덧씌우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지 실로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야당은 “윤석열 정권이 국민에게 선전포고를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 규탄대회에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헌법적, 반국민적 망동”이라며 “국민이 개과천선하라고,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준 마지막 기회까지도 가차없이 짓밟은 윤 대통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장악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과 관련해 19일과 26일 두 차례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김 여사와 그의 모친 최은순씨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정부·여당은 민주당이 이재명 전 대표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해 탄핵 청원을 이용하고 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탄핵 사유가 있어야 하는 거지 진영 논리에 따른 인민재판식 정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성명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탄핵 청원을 언급한 사실을 거론하며 “민주당은 탄핵 운운하며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론을 분열시킨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