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 전당대회에 나선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첫 TV토론회에 비전이 실종됐다. ‘1위 주자’ 한동훈 후보는 자신의 총선 참패 책임을 희석하려는 듯 다른 후보들에게 책임 돌리기에 바빴고,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는 ‘한동훈 때리기’에 급급했다. 정작 차기 당대표의 가장 큰 과제이자 이번 전당대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당 쇄신 방안에 대한 치열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후보는 9일 서울 TV조선 스튜디오에서 열린 1차 토론회에서 “(총선 패배는) 100% 제 책임”이라면서도 총선 당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던 나, 원 후보와 인천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윤 후보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게 “제가 전국에 지원유세를 다닐 때 왜 세 분은 안 했냐”라고 따져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책임을 나눠 갖겠다는 것이다.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원 후보는 “(지원유세를) 못 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꺾으려고 간 사람인데, 여론조사를 보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어서 잠을 불과 3∼4시간밖에 안 자면서 사투를 벌였다”면서도 “전국 지원유세 못 간 것은 죄송하고 통탄하다”고 했다.
한 후보는 또 총선 당시 “공동선대위원장 정책 회의를 한 번도 못 했다”는 원 후보의 지적에 “공동선대위원장 회의를 많이 했는데 안 오셨다”고 받아쳤다. 한 후보는 “원 후보가 저를 (지원 유세해 달라고) 마지막에 불렀을 때 그때 저한테 금리 말씀은 안 하시고, 삼겹살 같이 먹자고 했다”고도 공세를 가했다.
나 후보는 “(한 후보가) 정말 책임을 뒤집어씌우신다”며 “저한테 공동선대위원장 제안하셨을 때 ‘한강벨트 사수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유승민 전 의원을 모셔 달라’며 안 한다고 했었다. 강남 같은 데 공천 줬으면 제가 한 후보보다 더 많이 (지원) 해드렸을 것”이라고 했다. 한 후보는 이에 “(선대위에) 이름만 빌려주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사실상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세 후보는 한 후보를 집중 공격했다. 나·윤 후보는 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 신분이던 지난 1월 김건희 여사가 명품가방 수수 의혹 등에 대한 사과 의사를 밝힌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는 논란을 고리로 한 후보를 맹폭했다.
나 후보는 “매우 정치적 판단이 미숙하다”면서 “당사자(김 여사)의 생각이 중요한데 이것을 당무개입, 국정농단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윤 후보는 “인간 자체가 돼야 한다”면서 한 후보를 향해 “피의자가 그렇게 말을 바꾸면 구속영장 바로 때려버린다”고 꼬집었다. 이에 한 후보는 “여사가 아직도 사과를 안 하고 계시다”며 “그 상황에서 사적인 연락에 응했다면 더 문제가 된다”고 반박했다. 또 “대통령의 입장은 사과가 필요없다고 했다”고도 강조했다.
그동안 문자 논란에 이어 ‘사천 의혹’을 제기하며 한 후보에 대한 공세에 앞장섰던 원 후보는 관련 공방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원 후보는 한 후보에게 “(총선 당시) 전략과 비전으로 뭘 가지고 국민에게 호소하려고 했냐”면서 “그때 이재명 심판만 외치셨다”고 지적했다. 또 원 후보는 한 후보가 사천 의혹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하자 “어제(8일) 선관위가 전당대회 다툼을 이제라도 중단하고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경쟁을 시작해 달라고 했기 때문에 언급을 일단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다만 네 후보는 모두 ‘지난 총선 때 김 여사가 대국민 사과를 했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에는 전부 ‘그렇다’, ‘2027년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이재명 전 대표일 것이다’에는 ‘아니다’로 같은 선택을 했다.
이런 가운데 친윤(친윤석열)계는 문자 논란에 대한 한 후보의 사과를 요구하며 전면전에 나섰다.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한 후보를 향해 “정무적 판단 오류에 대해 쿨하게 사과하라”고 적었다. ‘원조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권성동 의원도 이날 “전당대회가 정상궤도로 수정되기 위해선 문자에 대한 진실 공방이 아니라 한 후보의 사과 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문자 논란’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을 중심으로 한 한 후보 사퇴 촉구 기자회견 등의 배경에 친윤계가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친윤 핵심 인사들은 공개 발언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이들이 문자 논란을 고리로 한 공세에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 후보 측은 이번 논란이 대세론에 지장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반한(반한동훈) 세력이 역풍을 맞아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