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이 생산해 모회사인 에스코넥이 군에 납품한 리튬 배터리가 3차례 ‘파열’ 사고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군대의 경우 리튬 배터리가 인화물질과 마찬가지로 감지 시스템이 설치된 이격 장소에 보관돼 군 장병의 인적 피해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실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군납 리튬 배터리 파열 사고는 총 31건이 발생했는 데 이 중 3건이 아리셀이 생산한 ‘BA-6853AK’였다. 이 배터리는 재충전 불가식 일차전지로, FM 무전기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7월 모 부대의 FM 무전기에서 이틀 간격으로 파열이 일어났고, 지난해 2월에는 또 다른 부대에서 신품 저장 과정에 있던 FM 무전기 배터리가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모두 보관 중 일어난 사고였다. 이 밖에 28건의 사고는 다른 업체인 A사가 납품한 제품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파열은 내부 화학반응으로 갈라지거나 찢어지면서 내용물이 분출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파열 외에 최근 5년간(2019~2023) 군납 리튬 배터리 폭발로 1명 이상 중상 또는1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사고는 2019년과 2021년 1건씩 있었으나 폭발의 경우 어느 업체 제품에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이 어렵다고 추 의원실 관계자는 전했다.
아리셀 화재 피해 가족들과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은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 책임자 5명을 이날 고소·고발했다. 경찰도 화성시 서신면의 아리셀 공장과 회사 관계자 주거지 등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벌였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는 경기 화성시청 분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박순관 에스코넥 및 아리셀 대표,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 등 5명을 고소 또는 고발했다고 밝혔다. 명단에는 박 대표 부자 외에 아리셀 안전보건 관리책임자와 감독자, 인력 공급업체인 메이셀 대표 등이 포함됐다.
이들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파견법 위반 등 6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이미 수사 당국에 형사 입건된 상태지만 유족과 대책위가 각각 고소인, 고발인 자격을 갖춰 향후 수사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고소인에는 유족 47명, 고발인에는 대책위 공동대표 4명이 이름을 올렸는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등 23명의 변호인이 참여할 예정이다.
경찰도 이날 오전 아리셀 공장과 관리·감독을 맡은 직원 자택 등 3곳에 수사관 22명을 보내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26일 아리셀과 인력공급업체, 아리셀 대표 자택 등을 강제수사한 바 있다.
한편, 화성시청에 분향소를 마련한 유족들은 전날 화성시가 친인척·지인에게 이달 10일까지, 직계·형제에게는 31일까지만 숙식비를 지원한다는 방침을 내놓자 이에 반발해 시장실에 난입하려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4명이 다쳤고 일부 유족도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화성시는 사고 직후 유족에게 전담 공무원을 배정해 지원해왔으나 ‘7일간’ 숙식 지원을 원칙으로 하는 정부 방침을 벗어나 지원을 이어갈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지원 대상은 유족 23가족 128명이다.
충돌 직후 시청 누리집에는 영상과 함께 분향소 철거 등을 주장하는 공무원의 익명 게시글이 올라왔고 100개 넘는 찬성 댓글이 이어졌다.
해당 공무원은 게시글에서 “우리 시는 직원들 밤낮으로 고생하면서 (유족) 편의 봐주고 지원해왔는데 이렇게 사람 폭행하는 거 보면 오늘 분향소 다 철거하고 지원 싹 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 게시글에는 “우리는 맨몸으로 당해야 하는 건가”, “정말 자존심 다 무너졌다”, “근조 리본 달지 않겠다”, “정말 자괴감이 든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번 충돌 사태는 시청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요구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일부 공무원들은 아리셀 대책위에 민노총 관계자가 포함된 만큼 화성시 공무원노조가 민노총 산하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