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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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러 점령지서 살지 않게”… 올림픽 대신 전쟁터 향한 선수들 [미드나잇 이슈]

운동선수 400여명 전쟁으로 희생
파리 올림픽 역대 최소 140명 출전
“조국 상황 알리겠다” 선수들 각오
“내 딸이 러시아가 점령한 조국에서 살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막심 할리니체프는 2017년 유럽 청소년 선수권 대회 금메달, 2018년 청소년 올림픽 대회 은메달을 딴 우크라이나 복싱 유망주였다. 그는 2021년 12월 복싱 연맹과 인터뷰에서 파리 올림픽 메달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올림픽 메달 꿈을 스스로 접었다. 국가대표 운동선수는 전쟁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한 것이다.

사진=AP·로이터연합뉴스

할리니체프는 2022년 4월 유럽 선수권 대회 훈련을 위해 키이우로 이동하던 중 러시아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직접 목격한 뒤 이런 결심을 굳혔다. 그의 코치에 따르면 할리니체프는 자신의 딸이 러시아가 점령한 조국에서 살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치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도 우크라이나의 명예를 지키는 방법이라며 그를 설득했지만 할리니체프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2022년 5월 21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 그해 말 바흐무트에서 전투 중 다리 부상을 입었고,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 할리니체프는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역은 현재까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어 그의 시신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못했다. 

 

할리니체프의 코치는 “그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다. 러시아의 침공이 아니었다면 그는 파리 올림픽에서 분명 조국을 대표했을 것이고 반드시 메달을 땄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9일(현지시간) AP통신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전쟁터에서 희생된 우크라이나 선수가 400여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청소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우크라이나 복싱 유망주 막심 할리니체프(왼쪽). 파리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려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고 2023년 3월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AP·IOC 제공

그중에는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권총 사격 선수 이반 비드냐크와 우크라이나 국가대표팀의 일원인 예호르 키히토프가 있었다. 사망 후 10개월 만에 신원이 확인된 22세 유도 선수 스타니슬라프 후렌코프, 2016년 리우 올림픽 국가 대표였던 역도 선수 올렉산드르 피엘레셴코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운동선수에 포함됐다. 아크로바틱스 코치 아나스타샤 이흐나텐코와 그의 남편, 18개월 된 아들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사망했다.

 

오는 24일 개막하는 파리 올림픽에는 우크라이나 선수 140여명이 참가한다. 역대 가장 적은 규모의 선수단이다. 전쟁과 동료를 잃은 슬픔 속에 훈련을 이어온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전쟁에 나서는 각오로 올림픽에 임한다. 르 몽드 등 외신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 이상의 것을 노리고 있다”면서 “경기에서 우승해 조국과 전쟁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