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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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총선 참패 후에도 변한 게 없다

여권, 쇄신 없이 권력투쟁 몰두
‘金여사 문자’ 놓고 진흙탕 싸움
똘똘 뭉쳐도 희망 보일까 말까
영부인, 성역으로 남아선 안 돼

최근 국민의힘의 행태를 보며 분노하고 절망한다. 이른바 ‘김건희 여사 문자’가 공개된 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진흙탕 싸움판으로 전락했다. 당권 주자 4명과 친윤(친윤석열)·친한(친한동훈)계는 사생결단식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여권 내 균열이 회복 불능사태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지경이다. 국민 시선을 조금이라도 두려워한다면 이런 저급하고 치졸한 공방을 며칠째 이어갈 수는 없다.

‘김건희 문자’ 파동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다. 사인에 불과한 대통령 부인이 민감한 총선 시기에 직접 여당 대표와 정치 현안을 협의하려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자격자의 ‘국정 간여’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 여사와 한 후보, 두 사람만 공유했을 문자 메시지가 흘러나와 당권 경쟁에서 한 후보를 배제하려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음모의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후보를 지지하는 진중권 광운대 교수에 따르면 김 여사는 총선 직후 그에게 전화해 1월에 자신의 사과를 말린 친윤계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최근 친윤계는 오히려 김 여사가 사과를 못 한 게 한 후보 책임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박창억 논설위원

‘김건희 문자’ 내전은 한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친윤계 우려에서 시작됐다. 다섯 차례에 걸친 김 여사의 문자 전문이 공개되며 친윤계가 한 후보에 대한 공세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김건희 문자’ 파동 이전에도 당권 주자들은 ‘배신자’ 논란을 벌였고, 총선 패배 책임을 놓고 드잡이질을 했다. 모두 한 후보를 타깃으로 삼았다.

국민의힘이 지금 당권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일 때인가. 총선에서 궤멸적 패배를 당한 게 불과 3개월 전이다. 국민은 윤 정부를 ‘불신임’ 수준으로 무섭게 심판했다. 윤 정부 국정 기조 전반의 대전환을 요구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아무런 성찰이나 반성이 없고, 권력투쟁만 벌이고 있다. 오죽하면 내부에서조차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의 전당대회를 보는 것 같다”(안철수 의원)는 푸념이 나오겠는가.

총선에서 참패하자 윤 대통령을 포함해 모두가 “변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윤 대통령은 1년9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처음으로 영수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성과는 없었고, 후속 조치도 유야무야됐다. 별다른 국정 쇄신책도 내놓지 않았다. 지난 4일 장관급 3명을 교체하는 소폭 개각을 단행했지만,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친다. 총선 직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유임될 것으로 보이고, 이태원 참사 이후 문책 여론이 높았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채 상병 사건의 본질은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명령을 박정훈 수사단장이 어긴 항명 사건”이라고 했다. 김 여사 명품백 의혹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저열한 정치공작”이라고 했다. 총선 심판을 받고도 대통령실의 인식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채 상병 사건의 경우 윤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잇달아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석연치 않은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전열을 가다듬고 108석으로라도 똘똘 뭉쳐야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보일까 말까 한 게 지금 여권의 처지다. 새 지도부가 구성되면 총선 참패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 결국은 윤 대통령부터 변해야 한다. 김 여사 문제만 해도 그렇다. 윤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김 여사의 처신은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과 총선 참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이번 문자 파동의 진앙에도 김 여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도 김 여사는 이 정권에서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다. 김 여사 문제로 윤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참모는 질책받거나 쫓겨났다. 윤 대통령이 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던 특별감찰관이나 제2부속실 설치는 감감무소식이다. 공적인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김 여사 리스크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민심은 완전히 떠날 수밖에 없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