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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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사고 운전자 ‘급발진’ 입장 고수 vs 경찰 “버스와 페달 헷갈렸을 수도”

지난 2일 오전 전날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서울 시청역 인근 교차로에서 경찰이 완전히 파괴된 차량 주변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낸 운전자 차모(68)씨가 경찰 조사에서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찰은 평소 몰던 버스 페달과 사고 차량인 제네시스 G80의 페달 모양이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하면서 경력 40년의 버스기사인 차씨가 버스와 승용차 페달을 혼동해 페달을 잘못 밟았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이다.

 

류재혁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은 10일 차씨 2차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며 필요시에는 압수수색이나 거짓말 탐지기 사용 등 각종 수사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차씨는 “‘차량 이상을 느낀 순간부터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들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씨는 지난 4일 첫 조사에서도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급발진을 주장했다. 차씨는 현재까지도 이같이 차량 이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류 서장은 ‘차씨 차량이 웨스틴조선호텔 지하주차장에서 빠져나온 후 가드레일에 충돌할 때까지 속도가 계속 올라갔는가’라는 질문에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출구를 나와서 점차 속도가 올라가는 것은 확인되는데, 자세한 지점별 속도 추정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분석 결과에 포함돼서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직 국과수 정밀감식·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블랙박스 영상은 사고 당시 상황을 추정할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차씨가 경적(클랙슨)을 울리지 않았는지 질의에 “추가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우리가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에서는 클랙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류 서장은 또 “버스는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이 모두 오르간 페달이지만 사고 차량은 가속 페달만 오르간 페달이었다”고 밝혔다.

 

오르간 페달은 하단부가 차체 바닥에 고정된 형태다. 다른 페달보다 피로도가 덜해 장시간 운전하는 버스나 대형 차량에 주로 탑재된다. 류 서장은 “G80의 가속 페달이 오르간 페달과 외견상 유사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시청역 참사를 시작으로 고령 운전자의 ‘급발진’ 주장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노인 운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는 전날인 9일에도 발생했다. 이날 8시 23분쯤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한 도로에서 70대 A씨가 몰던 볼보 승용차가 중앙선을 침범해 역주행하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반대 차로에서 달리던 차량 5대가 충돌하는 피해를 입었으며,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 2대에 타고 있던 4명이 부상을 입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차량이 급발진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부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70대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놀이터로 돌진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승용차는 담벼락을 부수고 놀이터로 진입한 뒤에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B씨와 동승자인 70대 여성 B 씨가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당시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B씨는 역시 경찰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고 차량이 급발진했다”고 주장했다.

 

시청역 참사를 시작으로 고령자 운전자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운전자 대부분은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사고 차량 운전자가 모두 60대 이상인 탓에 고령 운전자에 의한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한편, 특히 이중에는 급발진이 아닌 거로 확인되면서 고령운전자에 대한 안전 관리 강화가 필효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지난 10년간 정부 기관에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 중 절반 이상은 50대 이하가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안태준 의원실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단이 운영하는 자동차리콜센터가 지난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10년 6개월간 접수한 ‘급발진 주장’ 사고 신고 건수는 총 456건이다.

 

이들 사례를 신고자 연령별로 보면 60대가 122건으로 가장 많은 30.8%를 차지했고, 50대가 108건(27.3%)으로 뒤를 이었다. 신고자가 40대인 사례도 80건(20.2%)이었다. 이어 70대 46건(11.6%), 30대 30건(7.6%), 20대 7건(1.8%), 80대 3건(0.8%)으로 집계됐다.

 

60대 이상 고령층이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을 사고의 이유로 들어 신고한 사례(43.2%)보다 50대 이하가 신고한 사례(56.8%)가 더 많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고의 원인을 운전자의 나이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사고는 안타깝지만 그 원인을 가해자의 연령으로 환원시켜 모든 것이 노령 때문이라는 식의 논의 전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